[캐릭터는 살아있다]피노키오

  • 입력 2000년 8월 25일 18시 50분


저는 피노키오예요. 아빠가 하나밖에 없는 외투를 팔아 사준 책을 서커스 입장권과 바꾸고, 여우와 고양이의 꾐에 빠져 금화를 빼앗기며, 망치를 던져 귀뚜라미를 죽이기도 하고, 학교를 빼먹고 장난감 나라로 도망가고, 거짓말하다가 코가 늘어나기도 하는 등 온갖 나쁜 짓과 바보 짓은 도맡아 하는 나무 인형이죠.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말썽을 부리는 이유는, 원래 인간성이 나빠서가 절대 아니에요. 어린 아이다운 ‘자기중심성’ 때문이죠. 바로 눈 앞의 일, 자신의 일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을 뿐 그 결과를 예측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없는 거예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남에게 해가 될 줄 알면서도 나쁜 짓을 하는 고양이와 여우의 ‘이기심’과는 전적으로 다르답니다. 제 이야기를 꼼꼼이 읽어 보신 분이라면 제가 원래는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잘못된 길을 앞에 두고 얼마나 갈등하는지 잘 아실 거예요.

그래요. 제 이야기는 아직 너무 어려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나쁜 짓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또 그런 아이를 얼마나 달콤하게 꾀어내고, 얼마나 가혹하게 벌을 주는지도 보여 주지요. 카를로 콜로디 아저씨는 그런 이야기를 한껏 우스꽝스럽게 부풀려서 재미있게 들려 주고 있습니다. 가끔 가다 제가 어릿광대 노릇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예요. 하지만 덕분에 어린 친구들이 마음껏 웃으며 즐거워하고, ‘저 바보, 나 같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 정도는 기꺼이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밖에 모르던 말썽 많은 나무 인형이던 저는 우여곡절 끝에 진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저 모험을 겪는 것만으로 사람이 되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녜요. 그 과정에서 하고 싶은 거 참고, 땀 흘려 일하고, 남 위해 희생할 줄도 아는, 성숙하고 책임감있는 자세를 배우고 익혀야죠. 제 경우를 보세요. 말썽 부리는 사이사이, 친구를 대신해 불 속에 뛰어들겠다며 나서고, 족제비들의 꾐을 물리치고, 아빠를 상어 뱃속에서 구해내기도 하잖아요?

그런 자세를 갖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나이 먹고 덩치가 크더라도 옛날의 나같은 나무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어른들이 제 이야기를 읽고 알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이 말썽 부릴 때에도 나름대로의 심각한 이유와 갈등이 있다는 것도요. 결국 제 이야기를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재미있게 하지만 진지하게 읽어 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이죠.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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