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비무장지대의 모기떼

  • 입력 2000년 8월 16일 14시 31분


지난 100년간 유럽의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유럽산 나비 35종 가운데 3분의 2가 서식지를 120㎞ 가량 북쪽으로 이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남태평양 마샬군도 남쪽에 위치한 키리바시 공화국의 섬 2개가 해수면의 상승으로 물에 잠겼다. 이들 섬은 무인도이지만 어부들이 이용해 왔다. 1999년에 보고된 두가지 사례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구 온난화 연구로 가장 권위있는 과학자 단체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 이다. 유엔 조직으로 2000명의 기후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IPCC는 자연적 요인과 인간의 활동이 각각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인간의 산업활동에 의해 생겨난 온실효과 기체를 지목했다. 매년 화석 연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절반 가량이 대기권에 축적돼 마치 온실의 유리지붕처럼 단열작용을 하기 때문에 지구가 갈수록 더워지고 있는 것이다.

IPCC에 따르면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온도는 섭씨로 2도 상승할 것 같다. 10년에 0.2도 증가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마지막 빙하기의 끝 무렵에 빙하가 1000년 이상 걸려 녹았는데, 지구 표면의 평균온도는 약 6도 증가했다. 10년마다 0.06도 오른 셈이다. 요컨대 21세기에 평균온도 2도 증가가 지구에 미칠 영향은 심각할 것 같다.

우선 기후 변화로 유럽산 나비처럼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지를 바꾸면서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다. 해수면은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규제하지 않을 경우 21세기 말까지 50㎝ 높아질 전망이다. 20세기에는 10∼20㎝ 증가했다. 해수면이 높아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바다 온도의 증가에 따른 육지 근처 물의 팽창이며, 다른 하나는 빙하와 만년설의 해빙이다. 특히 남극대륙의 빙산이 녹기 시작하면 세계 지도는 급격히 바뀔 것이다. 섬나라들은 물론이고 유럽의 베를린 빈 마드리드, 미국의 동부 해안도시 대부분과 서부의 로스앤젤레스가 바닷물 밑으로 가라앉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에 지구 온난화가 일부 전염병의 발생과 전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올 여름 미국 동부 4개 주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뇌염을 일으키는 웨스트 나일(West Nile) 바이러스 모기와의 전쟁을 치렀다. 1937년 우간다의 웨스트 나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이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5세 이하의 어린이나 노인처럼 면역기능이 약한 사람을 감염시켜 뇌와 중추신경을 마비시켰다. 그런데 60여년 동안 미국 대륙에 출현하지 않았던 바이러스가 1999년 여름 뉴욕에 나타나 62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7명이 사망했다.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미국 땅에 전파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모기에 의한 전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뇌염 황열병 말라리아 등 모기가 퍼뜨리는 전염병은 지구가 더워질수록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모기는 지구의 온도 상승에 따라 번식 속도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예전에 서식하지 못했던 추운 지방에까지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날마다 3000명을 죽게 하는 말라리아의 경우 감염지역은 남부 유럽, 러시아 그리고 한반도로 확대된지 오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초에 박멸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1993년부터 환자가 다시 발생하여 1999년에는 3620명까지 급증했다.

한반도에서 말라리아 발병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비무장지대이다. 8월이면 이곳을 경계하는 장병들은 모기떼와의 전쟁에 여념이 없다. 비무장지대가 말라리아의 온상이 된 원인에 대해서는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남한은 북한에서, 북한은 남한에서 말라리아가 건너왔다고 티격태격한다. 1999년 겨울 양쪽의 다툼을 보다 못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에서 회의를 주선했지만 북한의 불참으로 공동 방제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남북 화해의 시대를 맞아 손을 맞잡고 비무장지대에서 모기떼의 서식지를 소탕하여 남쪽은 경기도 연천과 파주 일대, 북쪽은 개성 등지에서 말라리아의 창궐을 원천봉쇄하게 되길 바란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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