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타워]본사 사옥 매각의 양면성

  • 입력 2000년 8월 8일 18시 55분


국제통화기금(IMF)체제편입 직후인 98년초 A그룹 한 임원이 자금마련을 위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계열 증권사 본사 사옥 매각안을 들고 회장실을 찾았다. 보고를 받은 회장은 창밖을 내다보며 1시간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원은 슬그머니 결재판을 싸들고 나와 사옥을 팔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최근 B그룹은 서울 여의도 사옥을 팔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자금난이 심한가” 등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자 “매각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호는 80년대 중반이후 사용해 온 서울 중구 회현동의 22층 아시아나 빌딩을 500억원에 싱가포르 투자청에 매각하고 연말에 종로구 도렴동 신사옥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밖에 한 건설회사와 백화점도 각각 사옥과 본점건물을 매물로 내놓았다.

대기업에서 사옥은 회사의 상징이다. 대외적 위상과 신용을 대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기업의 사옥매각은 쉽지 않은 결정. 대부분 A그룹 회장처럼 ‘살을 깎는’ 아픔을 느낀다. 고객들의 신용이 떨어질 까하는 우려도 크다.

게다가 다른 건물을 구하는 비용, 매각하려는 본사 사옥에 세들어 있는 업체에게 갚아야 할 전세금 등을 따지면 본사 사옥매각이 ‘현금 동원’에 큰 도움이 안될 때도 많다. 지난해 600억원에 매각된 K증권의 본사 사옥이 건축비(900억원)도 건지지 못한 것처럼 대기업 본사 사옥은 ‘급매물’로 취급돼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본사 사옥을 매각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무리한 확장과 ‘빚 경영’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의 업보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위한 ‘확실한 의지’로 이해하면서 우리 경제의 ‘진화 지표’로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아마 기업의 본사사옥 매각은 이 두가지 측면을 다 갖고 있는 것같다.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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