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그림 읽기]김수철의 '하경산수도'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09분


무더위 끝에 몰아친 시원한 장대비로 산과 물이 세수하고 말쑥한 얼굴을 내비친다. 티끌 한 점 없다. 저 맑은 하늘과 드넓은 호수가 두 눈 가득히 다가온다. 그림 속 조각배와 강가의 작은 집을 바라본다. 깨끗하고 밋밋하고 슴슴하다.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맺히거나 잡히는 곳이 없어 시선은 하릴없이 화면 바탕을 투과해야 할 판이다. 화가는 가늘고 고르고 옅은 선을 그냥 죽죽 그었다. 까탈스런 데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저 팔 뻗어 나가는 대로 무심한 듯 그어댔다. 담청빛 먼 산을 본다. 산뜻하게 각이 진 모습, 청량한 시골의 여름 맛이 가슴 속 묵은 때를 씻어준다.

제시(題詩)는 이렇다.‘몇 번이나 낚시가 물려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번엔 또 물풀에 핀 꽃이 좋아 한 해를 더 머물겠네(幾回倦釣思歸去 又爲 花住一年)’

참 세상에 이런 핑계도 있다. 서재 창 틈으로 엿보이는 글 읽는 선비가 이따금 시골 생활을 무료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대처(大處)로 돌아갈까 생각을 했지만 이번엔 그만 물풀에 핀 꽃에 마음을 뺏겼단다. 이게 턱없는 소리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건너편 갈대 숲이 강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며, 집을 둘러싼 교목이 드리우는 넉넉한 그늘, 그리고 아침저녁 아련하게 들리는 뱃노래 가락에 속병이 단단히 든 인물이 아니란 말인가?

예로부터 이런 병을 천석고황(泉石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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