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충동(衝動)이혼

  • 입력 2000년 7월 1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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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중에서도 결혼은 어떻게 보면 일생을 거는 일인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결혼을 청산하는 이혼은 훨씬 더 어려운 선택으로, 그야말로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실낙원’으로 유명한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이혼론’에서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은 죄악’이라고 말했지만 ‘검은머리 파뿌리’의 다짐을 깬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이혼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남편의 퇴직금을 겨냥한 이른바 ‘정년이혼’이 화제가 되더니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황혼이혼’에 이어 ‘충동이혼’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혼수, 부인의 흡연, 생활비 등 사소한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충동적으로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 하루평균 113건으로 1998년에 비해 5.3% 증가했으며 하루평균 346쌍이 협의이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법원은 이혼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경우 구태여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허용하는 서구의 파탄주의(破綻主義)를 아직 채택하지 않고 있다. 혼인의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남편의 폭언 등에 눌려 평생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살아왔다며 칠순 할머니가 팔순 할아버지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을 기각, 행복추구권을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우리 시대에선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비난받을 일인가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제기된 이혼소송 중 여성이 소송을 낸 경우가 64%에 이르렀다는 것도 ‘가치의 변화’를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의미만큼은 변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는 ‘사랑의 기술’에서 진정한 사랑은 ‘배려 존중 책임’이라고 했다.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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