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유로결승서 느끼는 손자병법

입력 2000-07-03 18:24수정 2009-09-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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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고,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손자(孫子)병법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이 말은 일상의 대화에도 오르내린다.

맞는 말일 터이지만 그래도 걸리는 게 있다. 마주 선 양쪽이 똑같이 자신과 상대방을 잘 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손자는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추는 가능할 것이다. 그 중에는 싸우지 않고 물러나 뒷날을 도모하는 게 좋으리라는 것도,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지리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아닌 스포츠에서는, 특히 승패를 가려야 하는 토너먼트 방식의 스포츠에서는 그런 말은 마뜩찮게 여겨진다.

왜 그럴까. 어제 열린 프랑스-이탈리아의 유럽축구선수권 결승전은 내게 또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사실 나는 이 대회의 현장 중계를 한번도 온전히 보지 않았다. 어느 쪽이 이기든 크게 괘념할 일도 아니고, 방송사 뉴스에서 주요장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포츠 중계는 결과를 알고 보면 상당히 맥빠지는 법이다. 그래서 불확정성, 의외성이란 스포츠의 묘미도 즐기고 서로를 잘 아는 팀간의 승패는 어떨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새벽잠을 투자했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소감은 세 가지. 우선 ‘상대를 잘 아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상대 흔들기 전략에 골몰해야 수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수비)축구나 프랑스의 예술축구로 예단하면 흐름은 뻔했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초반 적극 공세는 말하자면 의외의 카드였다. 승부에 관계없이 이탈리아의 상대 흔들기는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실수에는 ‘해도 괜찮은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지난 일에 가정(假定)은 공허한 것이지만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가 두 번의 기회에서 한 번이라도 성공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의 실수는 후자의 경우였다.

그리고 승부에는 역시 운도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공격자를 늘리며 총공세를 편 프랑스는 물론 승자가 될 만하지만 로스타임 4분 중 3분이 지난 시점에 나온 동점골은 공은 둥글다 라는 말을 되새기게 했다.

이기기도, 지기도 하는 게 스포츠이다. 승패는 시쳇말로 움직이는 것이다. 다만 스포츠의 움직임도 모든 일이 그렇듯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이탈리아 경기는 나를 잘 아는 지 부터 점검해 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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