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페터 오피츠/"남북통일 지나친 기대는 금물"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12분


코멘트
페터 오피츠 뮌헨대 교수(정치학)는 동아시아 정세와 독일통일 분야의 전문가로 이 분야에 10여권의 저서와 5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독일 내 최고 전문가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은 기고문 내용.

분단 55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반세기가 넘는 대립과 갈등을 딛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했다.

동서독정상회담이 말해주듯 지나친 기대는 자칫 통일에 대한 불신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정부와 국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와 여유라는 덕목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1970년 동서독정상회담 이후 통일까지는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독일통일은 동서독정상회담의 직접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동서독정상회담에서 동독지도부가 의도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체제안정.

통일이 달성된 것은 정상회담을 통한 긴장완화와 더불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동독주민들의 의지와 국제적인 여건의 변화, 독일통일을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열강과 인접국의 태도변화 때문. 이들은 한반도 미래 결정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통일정책은 우선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의 열정을 간직하면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여기에는 정상회담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전쟁위험의 제거뿐만 아니라 북한지도부와의 신뢰구축 및 남북한 국민간에 경제 문화 사회분야에서의 실질적인 교류가 실현돼야 한다.

두번째로 민간차원의 교류와 함께 한반도 주변지역과 국제여건을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동서독의 경우 양국지도자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독일 주변 4강의 동의가 없었다면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독일이 4강의 동의를 받아내긴 했지만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4강은 독일통일을 형식적으로 지지했지만 나치독일을 경험했던 인근국가들은 독일통일을 거세게 반대했기 때문. 비록 한반도 상황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다르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역학구조상 외부조건은 상당히 비슷하다.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은 한반도통일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는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꺼리는 측면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북분단이 이 지역 세력균형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기 때문.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한반도통일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중 관계가 한 사건으로 인해 급속히 냉각되거나 헤게모니 투쟁으로 이어질 경우 남북통일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앞으로 대한반도 영향력 증가가 예상되는 미국과 중국에 초점을 맞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는 전방위외교를 구사해야 한다.

세번째 과제는 한국이 내부적인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서독의 실책 중 하나는 통일을 독일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경제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통일비용과 부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결여했다는 점. 서독정부는 이를 과소평가함으로써 통일 이후 서독주민으로부터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비록 통일은 성취되었지만 구조적인 격차와 통일비용으로 인해 아직 완전한 통일은 성취되지 않았다. 한반도의 경우 분단의 특수성 때문에 남북주민간 갈등과 이질감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부의 과제는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이런 문제에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정리〓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