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MS 쪼갠다고 기술혁신 되나?

  • 입력 2000년 6월 11일 19시 38분


미국 연방지법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7일 미 법무부의 요청대로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2개사로 분할하라고 명령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잭슨 판사는 MS분할이 미국 경제에 큰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술혁신을 촉진할 것이라는 법무부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같은 날 첨단기술 전문가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영국 런던 강연에서 영국이 최근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허가를 입찰을 통해 판매한 것을 거세게 비난했다. 영국 정부가 이 입찰을 통해 350억달러(약 38조5000억원)를 벌기는 했지만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며 통신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자에게 허가권을 줬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난주 프랑스정부는 영국과 같은 입찰방식도 아니고 ‘사업상 장점’을 기준으로 ‘미인대회’하듯이 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말한 세가지 사례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사례든 비용과 이익에 대한 기존 경제학 이론은 무시하고 기술혁신정책의 효과에 대한 막연한 추측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는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그런 방식의 MS분할은 사실상 독점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키고 가격상승을 유발해 시장을 더 왜곡시킨다. 그러나 미 법무부는 경제학적 비용보다 기술혁신 촉진 효과가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잭슨판사도 이에 동의했다.

통신사업 허가의 경우 경제학 교과서는 희소자원(통신사업권)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길은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네그로폰테와 프랑스정부는 누가 이 희소자원을 가장 잘 이용하느냐가 판단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십억달러의 정부예산이 낭비된다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법무부나 네그로폰테, 프랑스정부 등 기존 경제이론을 무시하는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반면 이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

경제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혜택이 입증된 비용보다 오히려 규모가 훨씬 클 수도 있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무엇이 기술혁신을 촉진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MS 강제분할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사안을 과거 AT&T 강제분할 때와 비교하며 AT&T의 분할이 아주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의 이동통신 기술이 현재 일본이나 유럽보다 크게 뒤진 것은 AT&T를 분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주장은 기술혁신정책의 효과를 고려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하지도 않은데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시키려고 ‘기술혁신’을 간판처럼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기술혁신을 촉진키 위해 MS를 분할하자고 하지만 진짜로는 MS의 힘과 부유함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기술혁신이 세계 곳곳에서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다. 이런 환경이라면 독자들은 어떤 제안이나 정책이 수십억달러의 예산을 낭비하거나 소비자의 물가 부담으로 이어질 것 같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정책이 기술혁신을 촉진할 수 있으니까. 21세기 ‘악당’들은 ‘애국심’보다는 ‘기술혁신’을 최후 수단으로 삼고 설칠 것 같다.

<정리〓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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