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리눅스사용자들 "누구든 개발참여 결과물 공개"

  • 입력 2000년 6월 11일 18시 46분


‘테헤란로의 진짜 자유주의자들.’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대박’을 꿈꾸며 사무실에서 새벽을 맞는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자유’를 꿈꾸며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괴짜들도 있다. 리눅스(Linux)에 심취한 ‘리눅서’(Linuxer·리눅스 사용자)들이 그들.

리눅스는 91년 핀란드 헬싱키대학 2년생이던 리누스 토발즈(당시 21세)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대의 리처드 스톨먼(13일 방한 예정)이 만든 서버운용소프트웨어 그뉴(GNU)를 집대성해 완성한 컴퓨터 운영체계. 설계도와 시제품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각국의 ‘해커’들이 자유롭게 개발에 참여, 9년의 진화과정을 거쳐 상업용 서버운용체제에 필적할 만한 경쟁력을 갖췄다.

이 리눅스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95년. 전산시설이 잘 갖춰진 대학 연구소의 20대 초반 프로그래머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공짜 프로그램’을 알아보면서부터.

당시 서울대 지질학과 4학년이던 이만용(李萬龍·28·리눅스코리아 기술이사)씨. 그는 독보적 서버운영프로그램이던 유닉스(UNIX) 못지않게 성능이 좋으면서도 386급 컴퓨터로도 움직이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엄청난 승부욕이 타올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불완전성을 채울 수 있다는 건 천재 프로그래머들에겐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

이씨는 96년 서버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자료를 전송하는 기능(다운로딩)만 있던 리눅스에 자료를 올리는 기능(업로딩)을 더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같은 해 하이텔과 나우누리의 동호회원 6명과 함께 첫 한글판 리눅스인 ‘알짜 리눅스’를 보름만에 개발해 ‘한국 리눅서의 대부’ 위치를 굳혔다.

그는 개발 즉시 프로그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리눅스 정신을 ‘자유주의’로 보는 이씨는 “개발을 끝내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코피가 쏟아졌으나 행복했다”며 “얼마나 자유롭게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느냐가 리눅서에겐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버 호스팅’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로 창업 7개월여만에 이 분야 1위로 떠오른 ㈜인터넷제국의 사장 최건(崔乾·32)씨는 ‘공짜주의 리눅서’. 인터넷제국은 지난해 말 리눅스로 개발한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를 600여 업체에 소스코드와 함께 공짜로 나눠줬다.

최사장은 매달 500만원 어치의 음악 CD를 구입, 이를 컴퓨터로 들을 수 있는 파일(VQF)로 만들어 270만 회원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그는 “서버를 팔아 남긴 이익금을 ‘내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며 “일반인들이 공짜로 정보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칭찬 한마디만 들으면 족하다”고 말했다.

최사장은 “인터넷은 ‘돈은 기업들이 내고 소비자는 공짜를 누릴 수 있는 구조’”라며 ‘자기 나름의 시장질서’를 강조했다.

이들 리눅서들이 ‘이기주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공산주의자’도 분명 아니다. ‘자기만족적인 천재’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강한 승부욕과 지적 호기심이 ‘자유’와 ‘공짜’를 추구하는 리눅스정신에 딱 들어맞는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의 업체 대학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리눅스문화’를 일궈 가는 리눅서는 10만명선. 대박을 챙기기 위해 밤을 새는 소수의 천재들과 ‘자유’를 지향하는 이들 다수의 천재 리눅서들 사이의 대결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주목된다.

▼스톨먼의 'SW공유 정신' 오늘날의 리눅스 만들어▼

13일 방한하는 리처드 스톨먼이 없었다면 리눅스도 없었다.

70년대까지 미국의 컴퓨터 공학도들은 모든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공유했으나 80년대 들어서면서 업체들이 소프트웨어에 저작권을 걸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도 “누가 공짜로 프로그램을 만들겠는가”라며 돈벌이에 나섰다.

71년 MIT 인공지능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리차드 스톨먼(49·MIT 컴퓨터공학과 교수)은 기존 질서의 수호에 나서 84년 유닉스의 공짜 버전인 그뉴(GNU)를 만들어 뿌렸다.

또 85년엔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을 결성, “소프트웨어는 공유돼야 하고 프로그래머는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그뉴선언문을 제정했다. 91년 리누스 토발즈가 리눅스를 개발할 때 스톨먼의 공유정신은 그 정신적 기둥이었다.

리눅스는 개인용 컴퓨터(PC)가 아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대형 컴퓨터(서버)를 움직이는 데 주로 사용된다. ‘업타임’(고장 없이 작동하는 시간)이 1년 이상 유지될 정도로 성능이 안정적이며 고장나도 서버가 있는 곳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해 원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직은 윈도가 세계 운영체계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서버호스팅 국내 1위인 ㈜인터넷제국이 판매하는 서버의 95% 이상에 리눅스가 탑재될 만큼 국내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대한 미국 연방법원의 반독점법 위반 예비판결과 분할명령도 리눅스의 수요 증가에 상당한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내년 초 개인업무용 소프트웨어 패키지인 ‘리눅스 오피스’가 공짜로 뿌려지기 시작하면 PC분야에서도 리눅스사용자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나성엽기자>intern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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