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종훈/韓日자유무역 서두를 이유없다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34분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의 5월 29일 방한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8일 방일을 계기로 한일관계의 현안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월드컵축구대회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게 됨에 따라 양국은 더욱 가까운 나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양국 국민이 비자 없이 셔틀비행기로 손쉽게 왕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자연히 돈이나 물건도 묻어서 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본사람들보다 우리 쪽에서 더 많이 갈 것으로 생각되는 반면 물건은 나가는 것보다 들어오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여겨진다. 따라서 돈은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을 것이다.

세계적인 스포츠행사를 유치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하고 많은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21세기 한일 신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35년간 세계 도처에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를 일본제품을 수입하는데 다 써버림으로써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해온 것처럼 이제 다시 월드컵 붐의 효과도 일본으로 흘러나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양국의 산업구조를 보면 수평적인 보완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경쟁관계로 점철돼 왔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질수록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주목되는 것은 보다 긴밀한 한일경제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의 구상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되면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무역거래에서 국경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한일 경제관계의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한국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연구하는 단계이며 협정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다시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몇 년 사이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이 밀착되려는 시점에서 자유무역협정을 논의하는 것은 우리에게 민감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일본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이 7.9%인 반면 일본의 한국 수입품에 대한 평균관세율은 2.9%인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이 사라진다면 양국에 미치는 영향은 그 충격이 몹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세장벽이 일본보다 약 2.5배나 높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진다면 일본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관세장벽은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사라져도 그 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일 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진다면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 수도 있다.

국교정상화 이후 한 번도 대일 무역적자를 해결하지 못한 한일무역의 불균형관계를 생각할 때, 무역적자가 더욱 확대된다는 것은 좋은 취지의 협정이라도 의미가 퇴색된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충분한 보완장치를 마련한 뒤에 업종별 품목별로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중국 러시아와 국교정상화를 이룩한 21세기의 우리 대외관계는 과거와 같은 미일 일변도의 의존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동북아의 새로운 지역협력이라는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이제 중국이 우리에게 제2의 무역상대국이 된 만큼 한중일이라는 국별3각 국제분업 차원에서 한일의 파트너십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위해 일본에 매달릴 필요가 없고, 하더라도 무역적자의 확대를 상쇄할 수 있는 자본 및 기술 거래의 확대를 보장할 수 있는 별도 장치를 마련하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경협이 확대되어 민족공동체경제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여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이룩한다는 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이종훈<중앙대 총장·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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