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주가 뒤흔든 금융팀 혼선

  • 입력 2000년 5월 24일 19시 37분


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가 55개 퇴출기업들을 발표했을 당시를 떠올려보자. 시장에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중소기업들이었지만 최초의 퇴출판정은 실물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23개월여가 지난 24일. 이번에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기업들의 ‘살생부’가 시장을 강타했다.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이 작성한 당정협의회 관련자료를 재정경제부가 협의회 수시간 전 일부 언론에 전달한 것. 어차피 의원들에게 공개될 터인데 굳이 대외비로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주식시장이 열리기도 전인 오전 8시40분께부터 워크아웃 조기졸업과 채무재조정 대상, 그리고 이것저것도 아닌 기업명단이 떠올랐고 시장은 퇴출대상을 주의깊게 추려내기 시작했다.

1시간 뒤 ‘2차 기업 구조조정 신호탄이 올랐다’는 성급한 관측이 쏟아질 무렵 이번에 금감원이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신용감독국 관계자는 “기초자료일 뿐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고 전면 부인했다. 아직 채권단의 최종 판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쓰면 오보가 될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였다.

재경부와 금감원이 혼선을 빚으면서 64개의 워크아웃 기업들은 이날 하루 극심한 주가등락을 겪었다. 설사 채권단 최종 판정과정에서 생사가 뒤바뀌더라도 엄청난 신뢰도 하락을 경험할 것은 뻔하다. 채권채무로 얽힌 이해당사자들의 혼란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재경부 일부 관료들은 “하나였던 것을 억지로 둘로 갈라놓으니 손발이 안맞을 수밖에…”라고 혀를 찼다. 기업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사안을 무심코 흘렸다는 반성보다는 금융정책 현안을 일일이 금감위, 금감원과 협의해야 하는 고충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발언이다.

금융 관료들의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과제임을 여실히 보여준 하루였다.

<박래정기자/금융부>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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