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푸틴시대의 개막

  • 입력 2000년 5월 7일 20시 18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당선자가 어제 러시아 제3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 공산주의 붕괴 이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작년 말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의 전격적인 사임 이후 대통령 직무대행직을 수행하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압승한 푸틴은 그동안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정책 목표로 표방해 왔다.

푸틴의 강력한 러시아 건설은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세계질서 구축과 국내 경제재건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의 신군사독트린과 신안보개념 등을 잇달아 채택하면서 서방은 물론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 대해 핵 추가감축을 제안하고 미국이 추진하려는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에 강력한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간의 관계를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푸틴에게는 옐친 정권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경제위기 극복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공기업을 사유화하고 자유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고질적인 부패를 감안하면 푸틴의 ‘약속’이 순조로이 이뤄질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아직은 취약한 민주주의 기반과 정치냉소주의 때문에 푸틴의 리더십이 단시일 내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푸틴 정부는 한반도문제에 대해 남북한 어느 쪽에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등거리 정책을 적극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한-러 수교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을 줄였던 러시아가 최근 그들과 신우호조약을 체결한 것도, 요즈음 푸틴의 서울과 평양 방문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러한 러시아의 적극적인 남북한 등거리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더 크게 보면 러시아는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견지하면서 한반도문제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동안 한-러 관계는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리가 러시아에 준 차관의 상환방법 및 이와 연관된 잠수함도입 문제 등 현안이 양국관계 발전의 걸림돌이 된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는 4자회담에도 빠져있다. 나름대로 소외감을 가질 만도 하다. 결국 그러다 러시아주재 한국외교관의 추방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한반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또 세계첨단의 군사과학기술을 갖고 있고 경제적 잠재력도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의 적극적인 대(對)러시아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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