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슬픈 아이들

  • 입력 2000년 5월 5일 20시 03분


자녀에 대한 사랑은 지나치기 쉽다. 한 집에서 대개 한 자녀 또는 두 자녀를 기르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태교 단계부터 잔뜩 신경을 쓰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육아관련 서적을 섭렵하며 ‘먹을 것’ ‘가르칠 것’을 가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이 오늘날 부모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해 자기 아이만 무조건 제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과외 문제도 따지고 보면 부모들의 이같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명문대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 입학은 세속적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게도 대부분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정하게 수험생들의 실력을 가르는 입시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하는데 그런 완벽한 제도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부모들이 그 빈틈을 노려 만든 것이 과외라는 이름의 변칙 전술이다. 이 점에서 과외는 ‘끼어들기’나 ‘속도위반’같은 불공정 경쟁이며 근본은 역시 부모들의 이기주의다.

▷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아이들과 가족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았던 것 같다. 꼭 어린이날이 아니더라도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의욕은 요즘 최고조에 달해 있다. 서서히 경기회복이 되면서 동네마다 영어교육 열풍이 거세고 조기유학 붐까지 불고 있다. 육아관련 사업은 불황을 모른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과도한 자식사랑도 부작용을 낳지만 이것이 모자랄 때는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진다. 빈부격차의 골이 파이면서 생계가 어려운 가정으로부터 버려지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고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로 어느날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도 적지 않다. 어른들에게 사랑은커녕 폭행 등 학대받는 아이들이 연간 수십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다. ‘과보호’와 ‘학대’라는 양극단이 교차하는 현실이다. 어린이날이면 밝고 천진스러운 아이들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어제도 한쪽에서 마음 상해 눈물짓는 어린이가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젠 이들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을 쏟을 때가 아닌가.

<홍찬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