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구은희/'우리말 세계화' 새 교수법 절실

  • 입력 2000년 5월 5일 20시 03분


국제 특허를 신청하려면 국제법상 인정된 5개의 언어로 번역해야 했는데 작년부터는 한국어로 서류를 제출할 수 있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오피스 2000’부터는 영문소프트웨어에서도 한글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는 한국이 세계 정보통신과 컴퓨터 업계에서 큰 활약을 보인데 따른 것이다.

미국 내 800여 개가 넘는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으며 SATⅡ 일본어 응시생의 70% 이상이 비일본계 학생이다. 이에 비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겨우 30여 개에 불과할 뿐이고 SATⅡ 한국어 응시생의 90% 이상이 한국계 학생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어 교육이 우리 재외동포들을 위한 뿌리교육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어 교육은 미국 주류사회와는 동떨어진 상황에서 민족교육 뿌리교육만을 내세우는 폐쇄적인 성격이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2세들에게 한국어는 더이상 모국어가 아니다. 비록 자라면서 한국어를 먼저 습득했더라도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한국어를 잊어가기 시작한다. 한국어는 더 이상 그들에게 가장 편한 언어가 아니다. 모든 학교생활이 영어로 진행되고 한국어로는 다른 친구들과 의사소통하기가 힘들다. 영어를 배워야 그들은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 점점 그들은 한국어에 대해 희미한 기억만을 간직하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억지로 주말 한국학교에 보내지만 ‘너희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그들은 미국땅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며 그들에게는 영어가 모국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한국어가 외국어의 하나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들보다 더욱 우수한 언어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년 6월 한국 연세대에서 열렸던 ‘해외 한민족과 차세대’에 관한 국제 한국학 학술대회에서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미국 유명 대학 내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돼 있고 대부분이 외국사람들에 의해 한국학과가 운영되는 것을 진작 알고 있던 터이지만 막상 연구논문을 능숙한 한국어로 발표하는 외국 학자들을 볼 때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어가 미국 정규학교 과목으로 가르쳐지기 위해서는 국어교수 방법론이 아니라 한국어 교수방법론이 체계화돼야 한다. 50, 60년대 한국에서 받았던 국어교육의 방법을 그대로 가져와 이곳의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미국의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딱딱한 주입식 국어교육을 하려든다면 한국어에 흥미를 갖고 있던 학생들마저 쫓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미국의 제2언어 교육 학계에서는 매일 새롭고 흥미로운 교육방법론들이 연구되고 교육된다.

다행히 이번에 전미 지역 최초로 한국어 교육학과가 설립돼 10여명의 미래 한국어 교육학자들이 열심히 수학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한국어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미국에서 제2언어 교육 방법론과 한국의 국어교육 방법론을 적절히 조화시켜 한국어 교육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새 천년에는 한국어가 우리만을 위한 언어가 아닌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언어로 자리잡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종대왕을 위시한 집현전 학자들의 한글창제가 2000년대 한국어 교육학 학자들에 의해 ‘한국어의 세계화’로 거듭나길 바라며 한국정부와 언론기관을 비롯한 한인 단체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해본다.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멋과 맛을 갖춘 한국어를 우리만의 국어로 눌러 앉혀서는 안된다.

구은희(미국 호프 인터내셔널 대학 교수·한국어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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