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당 金고문의 '망언'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피바람이 불 것이다”라는 민주당 김영배(金令培)고문의 발언을 단순히 ‘부적절한 표현’으로 보아 넘기기는 어렵다. 말이란 하는 사람의 사고와 의식의 산물이다. 더구나 발언 당사자가 집권정당의 고위인사고 그 말을 듣는 대상이 집권세력의 핵심이라고 할 때 그 발언의 내용은 권력내부의 집단의식으로 인식될 수 있다.

발언자인 김고문은 6선의원으로 집권여당의 총재권한대행을 지내고 16대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또 그가 발언한 자리인 ‘인동회(忍冬會)’는 현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동교동계 모임이다. 그렇다면 “현정권 인사들의 정권 유지에 대한 속내를 드러낸 망언”이라는 한나라당의 비난성명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김고문은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적절치 못한 표현’을 사과하고 “정권 재창출을 못하면 역사가 후퇴할 것이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해명’ 또한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계속 권력을 잡으면 역사가 전진하고 그렇지 못하면 후퇴할 것이란 논리는 일전에 물의를 빚은 김성재(金聖在)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의 ‘소수 정의, 다수 불의론’처럼 독선적인 사고다.

집권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합심’하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은 바른 정치와 권력의 올바른 행사를 통해 민심을 얻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김고문의 ‘피바람’ 발언에는 정권을 다시 ‘쟁취’하지 못하면 엄청난 정치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비민주적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방식, 버려야 마땅할 구시대적 정치의식으로는 어떠한 정치발전도,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도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정권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실질적 정권교체가 빛을 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정권 재창출은 국민의 뜻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피바람의 논리’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왜곡발언’으로 ‘영수회담’으로 조성된 모처럼의 정상적인 여야(與野) 관계에 금이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권은 보다 분명하게 발언파문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피바람’발언을 할 정도의 정치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계속 국회의장 물망에 올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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