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청계천 '흉물' 황학동 삼일아파트 재개발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0분


《서울 도심에서 청계고가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청평화상가를 지나 오른편에 길게 늘어선 중구 황학동 삼일시민아파트. 칙칙한 회색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 누가 봐도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다. 이 아파트는 84년 재개발지구로 지정됐지만 십수년째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재개발조합 내부의 갈등과 시공사의 부도, 감독 관청의 무대책 때문에 도심의 흉물이 돼 버린 지 오래인 삼일시민아파트의 문제를 진단해 본다.

▼재개발 추진경위 및 현황

2일 낮 삼일시민아파트 주변은 인적이 드물어 고요하기만 했다. 인근 동대문 의류상가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아파트 벽에 가스관 보일러관 등이 어지럽게 연결돼 있고 건물 관리가 제대로 안돼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파트 뒤로 돌아가자 이미 철거된 단독주택이 있던 자리에 폐자재와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삼일아파트 9개동 924가구와 단독주택 407가구로 구성된 황학재개발지구는 동아건설이 94년 시공사로 선정된 뒤 30층 3개동, 35층 5개동 등 8개동 1898가구의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는 고층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예정이었다. 동아건설측은 97년 공사에 착수해 단독주택부터 327가구를 철거했지만 IMF사태 이후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현재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내부 갈등

사업 지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삼일아파트 부지가 시유지라는 점. 재개발을 위해 시유지를 조합측에서 매입해야 하는데 동아건설이 매입 단계에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 평당 1000만원이 넘는 시유지를 매입할 능력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은 한때 서울시에 70년대 땅값으로 불하해 달라고 했으나 서울시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거부했다.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현재 땅을 매입하기 위해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있지만 영세민 이 많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이미 철거된 단독주택 주민들은 아파트 때문에 3년째 재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며 분리 재개발을 주장하고 나섰다. 단독주택의 경우 땅이 주민들 소유이기 때문에 시공사만 선정되면 즉시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아파트와 단독주택 주민 공동으로 설립한 조합이 유명무실해지면서 현재 각자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임의단체가 생겨나는 등 주민 내부가 심각하게 분열된 상태다.

▼재개발 채산성

동아건설이 손을 뗀 뒤 재개발에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사가 거의 없는 상태. 그나마 롯데건설이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역시 주춤거리고 있다.

롯데건설측은 재개발 비용으로 시유지 매입, 주민 이주비, 철거비, 건설비 등을 포함해 5000억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아파트 부지가 시유지라서 부지 매입비 때문에 건설비 단가가 매우 높다”며 “특히 아파트 1, 2층에 있는 상가에 대한 보상 금액이 만만치 않아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주상복합건물을 새로 지은 뒤 상가분양이 순조롭게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어서 참여를 꺼리고 있다.

▼대책

서울시는 물론 구청과 조합 모두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시공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렵다는 것.

중구청 관계자는 “주요 건설사에 공문을 보내 사업 참여를 권유했으나 전혀 반응이 없다”며 “시공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재개발 문제를 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서울시가 도시개발공사 등을 통해 공공방식으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아파트 주민들이 재입주하는 대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운 상태”라며 “도시개발공사가 재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서울 시민의 세금을 쓰는 만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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