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능’없는 대학입시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5분


정부가 ‘무시험 전형’으로 치르겠다고 공약한 2002학년도 대학입시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첫 고리를 연 것이 수능시험에 등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최근 교육부의 발표다. 수능시험은 그동안 수험생별로 전체 점수(총점)와 석차를 발표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전체 석차에 따른 등급만 수험생과 대학에 통보한다는 것이다. 수험생들의 성적은 상위 4% 안에 들 경우 1등급을 받는 등 9개 등급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입시에서 수능성적의 영향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능성적은 대학입시에서 사실상 합격을 좌우해 왔다. 수험생들은 모든 공부를 수능시험에만 집중시켰고 수능시험을 위한 고액과외가 성행하기도 했다. 이번 조치로 수능시험은 대학별로 단순히 지원자격을 가리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변화는 입시방식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즉 수능시험이란 입시의 잣대가 힘을 잃고 그 자리에 내신 논술 특기 등 다른 전형방식이 들어서게 된다.

과외를 없애기 위해 과외의 원인이 됐던 수능시험을 ‘퇴출’시키는 모양새이지만 문제는 새 입시방식이 우리 교육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청소년들의 학교 공부를 시대흐름에 맞게 생산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 교육여건에서는 대학입시 내용이 중등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선 고교나 새 입시의 첫 해당자인 고교 2학년들은 어떻게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능시험 비중을 축소하는 대신 대학에 신입생 선발의 재량을 부여함으로써 입시방식을 다양화한다는 것이 정부 발표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양화한다는 것인지 현재로선 알려진 게 없기 때문이다. 새 방식으로 치러질 2002년 입시까지는 1년반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2002년 입시는 큰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수험생들은 과거의 입시체제에서도 이 시점이면 지원 대학과 학과를 대략적으로 정해 놓고 입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입시방식의 대폭적인 변경이 예고된 상황에서 이번에 발표된 수능시험 등급제 말고는 알려진 입시정보가 없다.

현재 대학들은 새 전형방식에 대한 발표를 미루고 있다. 수능시험을 대신할 전형기준을 마련하느라 고심하는 대학의 처지도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루어 놓을 수는 없다. 입시가 혼란에 빠지면 대학도 피해를 보게 된다. 각 대학이 조속히 새 전형방식을 공개하는 것이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과도기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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