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DJ,약속을 잊으셨나요?"

  • 입력 2000년 4월 19일 19시 14분


4월은 과학의 달이고 21일은 33회 과학의 날이다. 하필이면 1967년 과학기술처가 간판을 내건 날짜를 기념일로 정해 두고두고 뒷말이 무성하지만 그만큼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정부의 지원 없이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에서는 이 날이면 어김없이 몇몇 유공자를 골라 상도 주고 훈장도 준다. 생애를 건 연구로 영예의 주인공이 된 분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낼 일이다.

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자들의 축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예외라는 게 과학계 밑바닥의 여론이다. 16대 총선 결과에 실망한 과학기술자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국회의원 당선자 115명 중에는 과학기술자 출신이 단 한 명도 들어 있지 않다. 전국구는 11번 당선자가 교육공학박사이므로 이공계 대표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과학기술보다는 교육 쪽에 가깝고 언론보도처럼 여성계 몫이다. 지역구에는 출마 직전 정보통신부 장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데이콤 사장을 지낸 인사들이 3명 당선되었는데 한결같이 상경계 출신으로 정보기술의 개발이나 생산보다는 관리나 유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일 따름이다.

과학기술자가 구태여 의회에 진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서는 과학기술자들이란 본디 실험실에 처박혀 일에 몰두할 뿐 세상일에는 무지한 꽁생원들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세계 유수 기업과 겨루어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하는 국내 기업의 최고 경영진이 대부분 공과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특히 민주당 비례대표의 경우 당선권은 물론이고 46명 전체 명단에 단 한 사람의 과학기술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집권당 총재인 김대중대통령이 과학기술을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1998년 2월 대통령 당선자로서 15년간 대통령의 발길이 끊겼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과학기술자들을 감동시킨 즉석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육성 발전에 대한 특단의 의지를 표명한 내용 일색이었다. 가령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은 누가 하느냐? 여러분이 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과학기술자가 이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할 정도로 과학기술자들을 치켜세웠다. 기념식에 참석했던 과학기술계 인사일수록 2년 뒤의 민주당 비례대표 인선에 더 실망했을 터이다.

과학기술자가 국회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국회에서 행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법령이나 예산을 심의할 때 과학기술계 출신의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보좌진이 만든 자료에 의존하는 의원들에게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21세기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여 의사결정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1972년 미국 의회는 의원들이 과학기술에 관한 정보 부족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평가국(OTA)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과학기술자가 의회에 진출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는 직능 대표성이다. 민주당 전국구 당선권에 여성계 재향군인 체육계 노동자 중소기업의 대표가 포함된 것과 같은 취지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중지를 모아 국회의 입법 활동에 반영하는 인물이 비례대표에 선정되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대중대통령은 KIST 창립 기념축사를 마무리하면서 “과학기술자에 대해서 물질만이 아니라 명예와 지위에 있어서 처우개선을 하겠습니다. 과학기술자의 자식들이 자기 부모가 과학기술자인 것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못지 않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러한 풍토를 이 나라에서 만들어야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글쎄올시다. 그런 날이 쉬 올는지요.

1960년대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법대나 의대보다 공대에 몰렸다. 그들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요즈음에는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고시병을 앓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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