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처]茶山이 유배지서 e메일을 보낸다면

  • 입력 2000년 4월 16일 20시 07분


내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e메일 체크다. 이제 e메일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e메일은 편지를 주고 받는 일 외에도 자기 나름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내 경우엔 ‘유목민적 글쓰기’에 딱(!)이다. 예전에는 글작업을 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채 외출할 일이 생기면 디스켓에 담아 두었다가 다시 작업을 하곤 했다.

▼매일 아침 e메일 체크▼

그러나 요즘에는 작업중인 원고를 내 e메일에 첨부파일로 띄워놓고 외출을 한 후 어디서든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다시 내 e메일박스에서 쓰던 원고를 꺼내 작업을 계속한다. 그래서 e메일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를 유목민으로 만든다. 연구실이나 집에 붙박이로 앉아있지 않아도 된다. 나를 옴니프레즌트(omnipresent·遍在)하게 만든다.

그런데 e메일을 쓰다보면 상대방이 언제 열어볼 지 궁금해진다. 또 내가 e메일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상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할 수 있다. 이런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e메신저’다. e메신저는 상대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지, 지금 나와 대화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표시해준다. 또 e메일은 물론 여러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음성채팅까지 가능하다. 새로운 e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포탈사이트에서 e메신저를 사용할 수 있다.(야후는 ‘메신저’, 다음은 ‘dTop’ 등) e메신저는 자신의 친구, 가족, 모임 등을 계정에 등록시켜 작지만 유용한 자기만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게 한다. 그래서 e메신저가 있는 한 인터넷은 외롭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꼭 2백년전인 1801년 다산 정약용은 신유사옥으로 옥고를 치르고 전라도 강진땅으로 유배를 당했다. 18년의 긴 귀양살이 동안 다산은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26통의 편지를 부쳤다. 18년 동안에 26통이라…. 한번 생각해보자. 편지를 써서 인편을 구해 전라도 강진땅에서 서울까지 보내는 데만 족히 두서너달이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쪽에서 다시 몇날 며칠을 생각한 끝에 답신을 써 인편으로 편지를 전달하는데 역시 두서너달이 걸렸을 것이다. 결국 서신 한 통이 왕래하는데 짧게는 다섯달에서 길게는 열달이 걸렸을 터이니 18년 동안에 26통의 편지는 사실상 쉬임없는 서신왕래였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또한 다산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둘째형 약전(‘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자)에게도 17통의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윤종문, 윤종억 등 18제자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경세서들 빨리 알렸을 것▼

만약 다산이 유배지에서 e메일을 띄울 수 있었다면, 더구나 e메신저에 그의 두 아들과 부인 홍씨 그리고 형님과 제자들을 등록시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면, 또 조선 제일의 저술가였던 다산이 500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술들을 e메일로 전송할 수 있었다면, 다산의 생각과 가르침은 더 빠르고 폭넓게 현실화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다산의 경세서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다산이 죽은 후 85년이 되는 해인 1920년 여름 다산의 현손(玄孫) 정규영(丁奎英)이 ‘다산연보’를 작성하고 난 후의 일이다. 시대를 잘못 만난 선각자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다음주제는 '해병대와 e동호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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