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통계로본 80년/1인당 GNP 43년만에 157배 증가

  • 입력 2000년 3월 31일 20시 52분


지난 80년간의 각종 경제 관련 통계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1920년 당시 한국인 가구의 78.3%는 농림목축업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었고 상업은 7%에 불과했다. 농가인구는 60년 58.2%, 70년 44%, 80년 28%, 90년 15.5%, 98년 9.5%로 급속히 감소했다.

▽국토〓산업구조가 바뀜에 따라 땅의 용도도 바뀌었다. 43년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국토의 76.7%가 임야였다. 이어 논밭 21.4%(밭13%, 논 8.4%), 대지 0.8%, 도로 0.1% 등이었다. 남한만 보면 논밭의 비율은 49년 21.9%에서 조금씩 줄어 98년 현재 20.8%를 차지하고 있다.공장용지가 처음 국토 통계에 잡힌 것은 76년. 당시 2㎢로 남한내 국토의 0.002%에 불과했다. 그러나 96년에는 공장용지가 413㎢로 국토의 0.4%로 늘어났다. 도로와 철도가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70년 0.2%에서 96년에는 2.2%로 11배로 늘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일본인 학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1920년 한국인 1인당 GNP는 당시 화폐단위로 99.7원, 38년에는 130.4원이었다. 38년 당시 1인당 GNP는 쌀 3.9섬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일본인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후 1인당 GNP는 53년 67달러에서 80년 1597달러, 96년 1만543달러로 43년만에 157배로 증가했다.

▽기업〓32년 당시 종업원 5인 이상 공장은 4643개였다. 제조업 공장은 광복 이후 꾸준히 늘어 55년 8600개, 80년 3만800개, 96년 9만7144개를 기록했다. 제조업 종사자는 32년 11만1000명에서 98년에는 232만명으로 늘어났다.

1910년 일제 강점 당시에는 법인회사가 177개, 35년에는 2487개였다. 98년 현재 법인회사는 14만6710개로 90여년만에 828배로 늘어난 셈이다.

▽직장생활〓43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공장노동자의 하루평균 근로시간은 11.2시간. 한달 평균 근로일수는 남자 25일, 여자 28일이었다. 노동시간은 60년대 말부터 급격히 늘어났다가 88년을 기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저임금도 일제시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조선총독부가 1943년 조사한 ‘노동기술통계조사결과 보고’에 따르면 당시 한국인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남자 53원, 여자 25원. 당시 서울에서 쌀 1섬(2가마)의 도매가격이 43원45전, 밀가루 1포대(22㎏)에 7원17전이었으므로 남자직공은 한달 내내 일해도 쌀 1.2섬 또는 밀가루 7.4포대, 여자직공은 쌀 반섬(1가마) 또는 밀가루 3.5포대를 살 수 있는 수준의 박봉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1943년 서울땅 300평 4500원▼

▽땅값〓80년간 변함없는 현상은 서울의 땅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43년 당시 서울의 중등지 논 1단보(300평)당 가격은 4500원, 밭은 1단보에 7500원이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가작대공(家作大工·집짓는 숙련 장인)의 한달 임금은 85원. 한푼도 안쓰고 모아도 서울에서 논 300평을 사려면 4년5개월이 걸렸다. 공장 근로자 임금으로는 7년1개월치를 다 모아야 서울의 논 300평을 살 수 있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