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강외교 제대로 하려면

  • 입력 2000년 3월 29일 19시 46분


‘강한 러시아’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직무대행 겸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반도 주변 4강의 역학관계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거리다.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은 어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러시아 신정부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등 4강외교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러 양국간의 건설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동반자관계가 더욱 심화 발전되어 나갈 것을 믿는다”며 러시아의 새 정부도 실용적 실리외교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한-러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 주변정세를 보면 우리는 푸틴이 이끌 새 러시아의 역할이나 움직임을 조금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처지다. 지난 2월 북한과 러시아간에 체결된 친선선린협조조약이나 중국과 러시아간의 ‘우호관계’만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적극적인 대(對)러시아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푸틴 신임대통령을 초청하겠다는 이외교부장관의 어제 보고는 시기적으로나 외교행태상 적절치 않다. 아직은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하지도 않았고 양국간에 정상초청을 위한 아무런 실무적 준비도 없는 상태다. 그런 마당에 불쑥 “초청하겠다”는 말부터 먼저 꺼낸 것은 아무래도 경솔한 처사다. 외교부는 실현가능성에 비중을 두기보다 우선 ‘보고를 위한 보고’에 더 신경을 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도 하다.

지금은 그같은 허례적이고 모양새만 갖추려는 외교행태에서 벗어나 4강외교 전반에 대한 전략을 면밀히 재검토해야 할 때다. 푸틴당선자는 “강력한 군사력이 없다면 러시아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 며 이미 지난 1월 신국가안보개념과 신군사독트린을 국가정책으로 공표했다. 그같은 러시아의 새로운 정책이 미국이나 서방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경우 그것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며 우리가 선택해야 할 외교 정책의 방향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4강외교의 최종목표도 결국은 남북한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러시아 신정부의 등장이 그같은 목표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계기가 되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러간의 협력 증진과 함께 보다 효과적이고 균형있는 4강외교를 추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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