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포커스]용산구-美軍 갈등 심상찮다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대학가의 반미운동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요즘은 용산구가 거의 매일 ‘주한 미군’을 비판하고 있어 곤혹스럽습니다.”

요즘 외교통상부와 국방부의 주한미군 담당자들은 갈수록 깊어지는 서울 용산구청과 주한 미군 당국의 갈등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용산구는 최근 거의 매일 주한 미군을 비판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하고 있다. 미8군 용산기지 내 불법 호텔 건축, 미군 소속 차량의 과태료 미납 문제, 주한미군에 대한 지방세 면제의 부당성 지적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언론이 주한미군에 관한 자료를 요구해도 감추기 일쑤였던 관선 구청장 시절의 태도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區 "신축 호텔 철거" 강경 국방부등 중재역할 곤혹▼

현재 용산구와 미군측이 가장 예민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은 미8군이 용산기지 안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짓고 있는 ‘드래곤힐’호텔 건축문제.

용산구는 이 건물이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라며 미군측이 자진해서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미군이 호텔 건물을 31일까지 철거하지 않을 경우 실제로 영내에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미8군 정문 앞까지 철거반원과 불도저 등 장비를 보내 구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용산구와 주한미군 사이가 왜 이렇게 나빠진 걸까.

구청 관계자들은 이태원을 명실상부한 관광특구로 개발하려는 구청의 계획에 대해 미군측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용산구는 지난해 이 일대를 관광특구로 개발하기 위해 미군이 공짜로 빌려 쓰고 있는 이태원동 아리랑택시 차고지를 돌려 받아 주차장 시설과 공연장 등 문화시설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용산구는 지난해 5월 미군측과 첫 실무협의회를 갖고 대체부지 제공 등의 조건을 제시했으나 미군측은 그 후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아 구청측의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주한미군의 존재가 용산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도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용산구에 미군이 없었다면 용산은 아마 서울의 중심지로 강남 못지 않게 발전했을 것”이라며 “미군 주둔이 반드시 필요한 현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용산구가 구 발전을 위해 요구하는 최소한의 사항에 대해 미군측이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미군 최근 대화 나섰지만 부지문제 미뤄 또 냉기류▼

용산구의 입장이 이렇듯 강경하자 미군측은 최근 먼저 대화를 제의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미군측은 분기별로 열리는 ‘용산구 한미친선협의회’를 열자고 적극 나서 23일 협의회가 소집됐다.

협의회에 참석한 용산구 직원은 “미군측이 드래곤힐 신축이나 과태료 미납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협의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아리랑택시 부지 문제는 거론만 됐을 뿐 양보의 뜻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용산구와 미군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자 서울시 국방부 외교통상부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묘안을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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