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21세기비전]서울 예닮교회 '이웃과 함께'

  • 입력 2000년 3월 6일 19시 29분


《인간복제가 실현되고 사이버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21세기. 종교는 과연 이 디지털 만능의 시대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게될 것인가. 새로운 메시지와 내부 혁신으로 21세기 한국 종교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가고 있는 의미있는 현장을 찾아가 본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4가 한국기독교 장로회 예닮교회 벽에는 예수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져있다. 몇 년 전 인근 아파트 주민은 투신자살을 하려다 이 초상화를 보고 생각을 바꿔 이 교회의 신도가 됐다.

교회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예수의 초상은 이 교회가 추구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교회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밖의 사람들까지 사랑하자는 것이다. ‘예닮’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닮자’의 줄임말. 1991년 김호식(66)목사가 57세의 나이로 이 교회를 개척할 당시 신도들에게서 교회명칭을 공모, 당선작으로 뽑혔다.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했던 예수를 본받자는 취지는 ‘열린 교회’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닮교회는 199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외관을 지니고 있다. 이 곳에서는 올해 2월 지역 주민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동소문동 동정(洞政) 보고회가 열렸다. 상가 조합원들의 회의가 열리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모 국회의원의 의정보고회도 열렸다. 이처럼 교회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는 교회는 드물다. 처음에는 교회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잖았다고 한다.

동소문동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예닮교회에서 동정보고회를 해 오고 있는데 주민과 동사무소직원들이 모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희 부목사는 예닮교회를 ‘지역과 더불어 가는 교회’라고 소개한 뒤 “지역내 봉사활동, 주민과의 교류 등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기독교만의 하나님도, 특정 교파만의 하나님도 아니며 온 우주의 하나님입니다.”

당회장 김호식목사는 5일 이같이 설교했다. 새 시대에 대한 그의 비전은 무엇일까. 그는 인터넷, 컴퓨터 등을 중심으로 한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너도 나도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를 맞아 사람들에게 더욱 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인터넷과 컴퓨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주식투자로 갑작스레 돈을 번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인해 대인관계가 삭막해지고 갑작스레 너무 큰 돈을 벌어 정체성의 혼란과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21세기에 인간은 기계와 물질앞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 해답은 바로 하나님이 내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김목사는 또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진실로 마음속에서 믿고 따르며 그 사랑을 느끼고 실천할 때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지고 천국이 깃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곱이 길을 가다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든 뒤 하늘에 다다르는 사다리의 꿈을 꾼 일화를 예로 들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꿈을 생각하며 자신이 누웠던 곳에 제단을 쌓았다. 이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 백남준이 발표한 설치작품 ‘야곱의 사다리’의 모티브가 되기도했다. 이처럼 자신이 누웠던 장소에서도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듯이 신앙에서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예닮교회는 그러나 예배에 있어서는 진지하다. 예닮교회만의 독특한 순서인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지는 시간이다. 목회자들은 기도문외에 신앙시를 낭독하기도 하며 현대어를 많이 쓴다. 현대인들의 언어감각에 맞추려는 것이다. 또한 1000여 명의 신도들이 가족같은 분위기를 이루어내고 있다. 교회는 이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한다. 교회측은 예배가 끝날 무렵 신도들의 입학 전직 등의 소식을 장내 방송으로 세세하게 전하기도 했다. 주일에는 신도들이 모두 교회식당에서 소박한 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의 소식을 묻는다.

대형 장미꽃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심명보씨는 이 교회 집사. 이날 ‘식당 봉사’ 당번을 맡은 그는 신도들이 ‘바울회’ ‘디모데회’ ‘사무엘회’ ‘에스더회’ 등 소규모 모임에 소속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인근 고아원이나 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교회라는 특정 장소를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사랑을 느끼고 전하는 ‘실천’을 남달리 강조한다.

이들은 또 신도들끼리는 물론 주변 주민들까지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교도나 교회 밖 사람들에 대해 유난히 배타적인 한국의 교회 현실에서 예닮교회의 존재가 빛나는 또다른 이유다.

예닮교회 인근에는 이 일대가 조선시대 빈민의료구호기관이었던 ‘동활인서(東活人署)’가 있던 자리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예닮교회 교인들은 병든 육신을 치료하던 장소에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교회가 세워진 것을 뜻깊게 여기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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