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성광/장애우 배려 아직 후진국

  • 입력 2000년 2월 28일 20시 10분


미국에 2년 동안 근무할 때 장애우를 대하는 미국사회를 관찰한 귀중한 기회를 가졌다. 미국에 있는 모든 공공 건물은 경사로를 설치해 휠체어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주차장에서 출입문에 제일 가까운 몇 자리는 장애우 전용이다. 그곳은 대개 텅비어 있지만 장애우 외에는 사용할 수가 없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비장애우(정상인)가 이 자리에 주차를 했다가 걸리면 예외 없이 비싼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에서 교통법원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장애우 스티커 없이 장애우 주차장에 주차했던 여성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의사진단서를 첨부해 억울함을 변소했다. 판사는 “처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임시 장애 스티커라도 신청을 해 부착했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벌금을 내라”고 선고했다.

과거 한국에서는 장애우에 대한 대우가 너무 형편없었다. 장애우들은 우체국에서 우표 한 장 살 수 없고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 한통 뗄 수 없었다. 우체국이나 동사무소에 들어가려면 높은 계단을 지나야 하는데 휠체어로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축 건물에 경사로가 생겨 이런 불편이 많이 해소됐으나 완전하진 않다. 오죽하면 휠체어를 탄 장애우가 서울시장에게 인도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커브를 없애달라고 편지를 보내고 자살하는 일까지 생겼겠는가.

곧 선거철이 돌아오는데 휠체어 장애우들은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선거를 할 수도 없다. 투표권이 없어서가 아니라 투표장에 계단만 있기 때문이다. 투표소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서너 명이 계단으로 들어올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장애우들은 다른 사람들의 동정이나 도움을 받기 싫어하기 때문에 구차하게 한표를 행사하기보다 아예 포기해 버린다.

장애우들은 택시를 타기도 어렵다. 모든 운전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같은 요금을 받고도 타고 내리는데 시간이 걸리고, 휠체어를 싣고 내리기가 어려우며, 싣다가 좌석을 더럽힐 수도 있어 여러 모로 귀찮기에 손을 들어도 못본 척하고 지나가 버린다. 대부분 큰 식당조차 계단만 있지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를 타고 혼자 힘으로 출입할 수가 없고 화장실에도 갈 수가 없다.

최근 신문에서 기막히는 기사를 읽었다. 서울교대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 특차 합격생을 불합격 처리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한눈 가지고는 예체능을 가르칠 수 없는지를 의사 입장에서, 또한 학부모의 입장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만약 서울교대 교수님이, 혹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한쪽 눈이 실명하게 된다면 사표를 내고 교직을 떠나야 하는지 묻고 싶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정 책임자인 김대중대통령도 장애우이지 않은가? 교육자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이렇게 지극히 비교육적인 모순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이런 것을 대수롭게 여기고 그냥 넘겨버리면 이제부터 선생님들은 한쪽 눈에 시력장애가 있지만 나중에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초등학생들에게 너는 꿈을 접으라고 설득해야만 될 것이다.

십수년 전에 모 의과대 시험에 합격한 소아마비 학생들을 탈락시켰다가 어렵게 복학시킨 일이 기억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우뿐만 아니라 눈이 전혀 안보이는 장애우, 목 이하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우까지 입에다 문 것으로 컴퓨터 자판을 눌러가며 의대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각 분야에서 전문의사로서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비장애우들은 오늘 교통사고가 나 장애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세계를 둘러보면 선진국일수록 장애우를 우대하고 후진국일수록 장애우를 차별하고 홀대한다.

박성광(전북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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