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허준·증권·4당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요즘 시중의 화제는 증권 빼고는 허준 얘기’라는 기사가 어느 신문에 났다. TV 볼 시간이 별로 없지만 나도 드라마 ‘허준’만은 열심히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허준 열풍이 전국을 휩쓴다’는 기사까지도 반가웠다. 나 역시 그 공감대 안에 있다는 느낌에 왠지 안도가 되기도 한다. 나는 ‘장미와 콩나물’이라는 TV드라마에서 인정머리없는 장남으로 나왔던 탤런트 전광렬씨가 너무 뺀질이 같아서 싫었는데, 지금은 허준 역을 열연하는 그가 정말 멋지게 보이고 무척 좋다. 극중 인물과 그 연기자를 동일 인격으로 착각하는 경향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내가 드라마 속의 ‘허준’에 푹 빠지는 것은 자신이 의인(義人)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이어서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의인을 대망(待望)하고 그런 인간상에 갈증을 느끼는 것일 게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허의원(醫員)님 같은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허의원님은 전국의 ‘허준’ 시청자들에게 생활 속의 어떤 구원(救援)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증권 얘기가 시중의 가장 뜨거운 화제라는 건 또 다른 점에서 수긍이 간다. 그저께 몇달만에 만난 동창생들 사이에서도 코스닥시장 주가의 비밀이 주된 화제의 하나였다. 주식투자를 하건, 하지 않건 돈 얘기에 초연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것이 정당한 투자라면 떼돈을 거머쥔들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난의 표적이 될 수는 없다. 돈에 대한 관심과 정상적 제도 속의 이익추구는 ‘경제적 인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허준과 증권에 대한 얘기는 생활인들의 삶에 교훈과 활력을 주는 플러스 효과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엔 고된 작업이 하나 생겼다. 적어도 나로선 ‘어떤 긍정적 교훈도, 생활의 활력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신문과 TV를 통해 쳐다봐야 하는 일이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업고 활동중인 총선시민연대가 ‘정치적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구정치인들’로 규정한 이른바 제4당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보다는 허준의원님을 더 보고 싶다.

<배인준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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