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또 '예고된 人災'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소잃고 외양간도 못고치는 ‘예고된 인재(人災)’.

이번 서울 여의도 지하공동구 화재 현장을 둘러본 화재전문가들은 이렇게 일성을 터뜨렸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 화재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은 과거에 발생했던 유사한 사고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일반 전화선과 초고속통신망, 전력선은 물론 상수도와 지역난방관까지 함께 들어있는 중요 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화벽이나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화재진압과 복구시 반드시 필요한 ‘지하지도’도 있는지 없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런 지적은 한두번 나온 것이 아니다. 6년전인 94년 3월 10일 서울 종로5가 통신구 화재로 전기와 통신이 모두 끊겨 전산업무가 마비되고 수도권 일대가 암흑가로 변했을 때도 한국통신과 한국전력 등 관련기관들은 온갖 대책들을 내놓으며 사고재발 방지를 다짐하지 않았는가.

지하시설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하지도의 마련, 사고발생시 곧바로 우회통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환상형 통신망’ 구축, 정기적인 소방점검과 체계적인 관리 등이 바로 그때 지적된 문제들이다.

그러나 같은해 10월 부산에서 통신구에 불이 나자 수만가구의 전화가 30여시간 이상 불통됐고 한 달 후엔 대구에서 통신구 화재가 발생하자 증권사와 금융기관의 전산망이 마비되기까지 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통신케이블에서 불이 나 인근 2만여가구의 전화는 물론 관악구와 영등포구 등 강남 일부의 전화가 불통되기도 했다. 모두 ‘작은 불’에 불과했지만 매번 유사한 불상사를 초래했고 똑같은 문제점이 되풀이하여 지적됐다. 한마디로 사고가 나면 그때만 세상이 시끄러울 뿐 시간이 가면 모든 게 잊혀지는 불감증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수는 무엇으로든 설명이 안된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교훈조차 얻지 못하는 우리의 불감증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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