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치단체장의 총선출마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 15명이 4·13총선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민주당과 자민련 한나라당에 공개 또는 비공개로 공천신청을 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출마 공직자의 사퇴시한인 13일 이전에 공천이나 내락을 받으면 단체장에서 물러나고 공천을 못받으면 그대로 단체장직을 수행한다는 전형적인 ‘양다리 걸치기’ 수법이 아닌가 싶다.

피선거권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에 나설 수 있으므로 자치단체장들의 출마의사 표명을 탓할 것은 아니다. 단체장들의 다른 공직선거 출마를 규제했던 법 조항이 지난해 위헌판정을 받은 것도 참정권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에게 성실히 자치단체를 이끌겠다고 공약해 단체장으로 뽑힌 이들이 불과 1년6개월 만에 총선무대를 기웃거리는 것이 과연 정치도의적으로 옳은 일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단체장선거때 표를 준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자치단체 행정을 소홀하게 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양다리 걸치기 의식이다. 공천을 받으면 단체장직을 훌훌 털고 나서고 공천에서 탈락해도 보장된 단체장 임기를 채우겠다는 자세는 일견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정히 국회의원을 해야겠다면 떳떳하게 지역민의 양해를 구하고 하루라도 빨리 단체장직을 내놓은 다음 총선에 나서는 것이 정도가 아니겠는가. ‘잘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이라는 식의 사고로 총선무대에 이름을 얹는다면 이것은 그러잖아도 욕먹는 정치에 또 한차례 흙탕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밀리에 공천신청을 해놓은 단체장들이 불과 며칠이라도 자치단체 행정을 자신의 표몰이 방편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회에 진출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자치행정은 그를 성취하기 위한 발판쯤으로 생각하는 단체장들이 있다면 그런 행태로는 지방자치의 원숙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자치에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국회로 옮겨가려는 단체장들은 비단 이번 총선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각종 선거에서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자치단체장도 다른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한 지난해 헌재의 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단체장들이 유권자에게 약속한 임기의 절반도 안채우고 다른 선거직 후보로 나서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는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가령 선거직 공직자는 법정 최소한의 임기를 채워야만 다른 선거직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등 새로운 대책을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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