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진현/탈북자에도 '햇볕'을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 對中-러 외교 재검토 필요 ▼

작년 11월초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었던 7명의 북한 주민이 두 달간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중국 당국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 이들은 한때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도움으로 러시아 당국의 출국비자까지 받아 그들이 원하던 한국행이 성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태는 곧 반전되어 러시아는 이들을 중국으로 추방했고 중국은 다시 북한으로 송환하였다. 이제 어린이와 부녀자가 포함된 7인의 운명은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결말에 대해 많은 국민과 인권단체들은 당연히 분노하고 있다. 이들을 ‘사지(死地)’로 돌려보낸 러시아와 중국의 비인도적 처사에 대한 거센 항의와 함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우리 외교당국의 무능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대해 취해온 이른바 ‘조용한 외교’의 효용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대중국-러시아 외교의 재검토 요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러한 결말에 대해 일부 언론의 상업적 보도 태도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하여 정부와 언론간에 미묘한 책임논쟁도 전개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러시아와 중국의 태도는 물론 대단히 개탄스러운 것이었다. 러시아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이 난민으로 인정한 탈북자들을 중국으로 넘겼고, 중국도 인도주의적 처리를 시사한 직후 신변의 위협이 쉽게 예상되는 북한으로 송환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러시아나 중국이 탈북자 문제에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거 옐친 전러시아대통령은 시베리아 벌목공 처리와 관련해 한국으로의 송환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으며, 중국도 공식적으로는 탈북자는 난민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작년 한 해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주민은 147명에 달했다. 앞으로도 탈북자 문제는 주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 발생할 것인만큼 양국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통해 이들의 고민과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내고 또 이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명분을 부여하는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탈북 7인의 처리에 관한 2개월에 걸친 외교적 줄다리기가 결국 최악의 결과인 북한송환으로 종결된 데 대해 정부당국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문제는 단순히 외교력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현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탈북자 문제가 과연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면 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한의 전제 억압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인은 궁극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나오며, 효과적인 탈북자 정책은 밀폐된 공간의 ‘통조림 금강산 관광’보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도할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조용한 외교’라는 방법론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방법론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이다. 현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호응을 얻어 당국간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급급하는 한 탈북자 문제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부차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문제의 본질은 정부의지 ▼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패에서 정확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탈북자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이번 사건이 마지막 사건이 아닐 것임도 분명하다. 시베리아 벌목공, 식량난에 따른 탈북 러시, 황장엽 비서의 망명 등 탈북의 동기와 형태, 경로는 다르지만 지난 10년간 이어지고 있는 탈북현상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북한주민의 절망의 반영이다.

앞으로도 탈북자의 행렬은 이어질 것이며 탈북의 주경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될 것이다. 이들은 절망 가운데서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찾을 것이다.

우리는 조용하지만 끈질긴 집념의 외교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내어 이들을 도와야 한다. 북한의 변화의 싹이 바로 여기서 움틀 것이기 때문이다.

백진현(서울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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