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영화 '거짓말' 예술인가 외설인가 2라운드

  • 입력 2000년 1월 12일 20시 04분


영화 ‘거짓말’은 음란물인가, 아닌가.‘거짓말’의 음란성 여부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한계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영화를 만든 당사자들과 일부 영화평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검찰 수사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와 문화계 일부 인사들은 “영화 ‘거짓말’은 예술을 가장한 문화 쓰레기”라며 “폐기처분”을 주장하고 있다.

▼검사들 “예상보다 충격”▼

◇검찰입장

검찰은 6일 ‘음란폭력성 조장매체 대책 시민협의회(음대협)’가 ‘거짓말’의 영화감독과 제작사 극장주 등을 음화반포 제조 혐의로 고발한 이후 현재 고발인 조사만 마친 상태다. 12일 일부 언론이 영화 필름을 압수하고 감독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보도를 한데 대해 검찰 관계자는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거짓말’ 보도”라고 말했다. 지금은 수사 초기단계로 어떠한 방침도 정해진 바가 없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

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형사3부 검사들은 등급심사를 거치면서 일부 삭제된 필름과는 달리 고발인이 증거로 제출한 영화 원본 CD를 돌려봤고 서울지검 간부들도 11일 일부 전문가들과 함께 영화내용을 상세히 분석했다.

검사들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검사는 “벌거벗은 채 도구를 이용해 상대방을 때리며 쾌감을 유발하는 관련 장면 등은 평소 음란물 단속에서 압수한 포르노물에서 자주 접했던 장면이었다”며 음란성이 강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영화사측에 대해서도 검찰은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한 검찰간부는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불량식품을 만들어 놓고 ‘경제활동의 자유’ 운운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불량식품을 자기네만 먹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분별력이 없는 청소년 등이 사먹도록 유통시킨다면 심각한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

또 다른 간부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우리는 지저분한 음란물을 만들어 돈을 벌겠다’고 말한다면 그나마 정직하다고 볼 수 있다”며 “3류 포르노 영화를 만들어놓고 ‘예술’ 운운하며 거짓말을 해대는 것은 역겹다”는 반응도 나타냈다.

한 소장검사는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외설여부는 관객과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겨두어야 한다는 무책임한 이상론을 펼치는 일부 평론가들도 한심하다”고 말했다.

▼사법처리 신중 또 신중▼

◇수사전망

검찰은 조만간 피고발인인 장선우 감독과 제작사인 ‘신씨네’ 관계자들을 소환해 일단 조사는 할 방침. 또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볼 계획이다. 검찰은 법조 출입기자들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 등 여론 수집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이전에 비해 한결 신중한 편이다. 영화가 음란성이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지만 바로 사법처리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검찰간부는 “사법처리할 경우 영화에 대한 논란과 관심이 증폭돼 더 많은 관객들이 몰릴텐데 이것은 바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이 처한 상황도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최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검찰권을 과감하게 행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검찰이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 고민스러운 대목. 이에 따라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등 강경대응보다는 불구속 기소 또는 영화사와 극장측에 조기 종영(終映)을 촉구하는 선으로 매듭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영화 개봉 전에 무삭제판 불법 CD가 광범위하게 유통된 점을 중시, 유통경로에 대한 수사를 별도로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또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 상영허가 판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을 검토중이다.

▼“되레 역기능 증폭 우려”▼

◇영화계 반응

음대협의 ‘거짓말’ 고발과 검찰 수사에 대해 영화계 인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거짓말’은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사실상 ‘검열’을 거쳐 상영허가가 난 영화인데 이에 대한 사법적 처리는 어불성설”이라며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인 제스처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영상물 등급위원회 위원이자 대변인인 나항주 교수(안양대)는 “공연법에 의한 등급심의와 형법에 의한 사법처리는 별개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음란물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성욕의 자극 여부인데 극장상영판 ‘거짓말’이 원판보다 17분 줄어들면서 그 음란성이 대부분 제거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는 시각에 따라 ‘거짓말’을 문제삼을 수도 있으나 제도권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기능이 증폭될 우려가 높은 영화”라며 “등급위원회는 ‘거짓말’을 5개월간 심의하면서 현행 법이 수용할 수 있는 영화로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검찰도 사법적인 판단을 적절하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형·김희경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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