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91)

  • 입력 1999년 12월 7일 18시 29분


로프트가 없는 것만 빼고는 내 방과 똑같은 방이었습니다. 우선 사방 벽을 빈틈없이 가득 채운 그림들이 보였어요. 그리고 작은 나무 설합장 위에 십여 개의 도자기들이 얹혀 있었구요. 가구는 단촐했습니다. 커다란 더블 베드가 방의 안쪽에 놓여 있고 가운데에 식탁과 나무의자가 둘, 그리고 안락의자는 하나 뿐이었어요. 그네가 두 개의 스탠드를 켜자 방은 촛불을 여러개 켠 것처럼 따스하게 밝아 왔습니다. 그러나 거긴 가난하고 외로운 노파의 방이라는 점을 감출 수가 없었지요. 나는 장 앞으로 다가서서 그네가 보여주는 도자기들을 꼼꼼하게 한 가지씩 살펴 보았습니다. 그중에 두어개는 일본 것인데 아마도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기념품으로 주었을 듯한 평범한 술병이었어요. 그리고 주둥이가 넓적한 항아리 둘과 호리병 모양을 한 것은 중국 것이었는데 아마도 백년 가까이는 되었을 거예요. 그것이 그네가 말하던 도자기라는 걸 알았지요. 내 느낌으로는 그것도 홍콩이나 어느 항구에서 여행자가 뒷골목의 골동품 점에서 구입했을 것 같은 생활 자기에 지나지 않았어요. 아마 같은 모양과 그림이 그려진 병이 근처에 많이 있었을 거예요. 나머지는 토기가 몇 개 있었어요. 모두 여행지에서의 산물들이었죠. 클라인 부인이 내게 속삭였어요.

어때요, 좋지요? 이것들은 남편이 내게 사다 준 것들이었어요. 여기 이것은 일본에 갔을 때 우리 부부가 샀구요.

내가 중국 호리병을 들어 옆구리에 그려진 산수화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네가 내게 말했어요.

이걸 당신이 사겠다면 팔겠어요.

글세요….

나는 웃는 얼굴을 그네에게 지어 보였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세요?

클라인 부인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말했어요.

오백 마르크는 넘겠지만 삼백이면 되겠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방 옆에 붙은 그네의 부엌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찬장이나 냉장고는 비어 있을지도 몰랐어요. 분위기로 보아 그네는 생활보호 연금으로 살고 있었겠지요. 그네는 아마 술 몇 병만 가지고도 며칠을 살 수 있었을 거예요. 그네가 내게 앉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식탁 앞의 의자에 앉았어요. 클라인 부인이 내게 물었습니다.

아마 차가 있을텐데 위스키를 타서 줄까요?

그냥 위스키만요.

그게 좋겠군요.

그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반쯤 남은 스키치 위스키 작은 병과 잔 두 개를 가지고 왔어요. 그네는 두 잔에 술을 반쯤만 따르고는 내 마즌편 그네 자신의 안락의자에 앉더군요. 클라인 부인이 중국 호리병에게 술잔을 쳐들어 보이며 중얼거렸습니다.

잘 가라, 얘야.

아끼던 물건인가요?

나는 그게 그저 싸구려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네의 기분을 맞추어 주노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아주 유명한 화가였어요.

언제 돌아가셨는데요?

십 년 전에.

저기 벽에 걸린 그림들이 그 분의 작품인가요?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가고 남아 있던 것들이에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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