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문화 우리건축]공항, 시대의 야망과 좌절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자전거집 형제는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하늘을 날았다. 1903년 비행기는 그렇게 등장했다. 비행기는 우리 시대의 축지법이고 타임머신이 되었다. 마르코 폴로, 콜럼버스에게 평생의 노정이었던 거리를 이제 우리는 하루 안에 오갈 수 있다.

대륙간의 거리는 비행시간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국경의 개념도 바뀌었다. 공항은 국토 내부에 점으로 집약된 국경이 되었다. 공항 청사는 건물로 표현된 그 나라의 얼굴이 되었다. 건축적 자존심의 대결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김포공항은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얼굴이다. 청사 지붕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살리도록 곡선을 사용했다고 한다. 건물 곳곳에는 전통적인 문양이 장식되었다. 전통의 형태를 빌려오면 훌륭한 우리 얼굴이 되리라던 소박한 믿음이 남긴 흔적이다.

되는대로 들어선 상업시설과 관광안내시설은 건물의 평면계획에 문제가 있음을 실토하고 있다. 혼란스런 재료 사용, 투박하기만 한 계단, 거칠게 만든 의자,조악한 인공정원 장식은 이미 이 건물이 디자인 측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함을 드러낸다.

게다가 우리의 공항은 어둡다. 1974년 문세광의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송영대(送迎臺)가 폐쇄된 이후 김포공항은 비행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공항 전망대는 국내선 청사의 구석에 골방처럼 마련되었다. 보안 검색에 필요한 공간은 세계 어느 공항보다 넓게 확대되었다. 탑승권을 받고 기다리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는, 지극히 기능적인 요구만 만족시키는 공간이 된 것이다.

공항이 한나라의 얼굴이라는 명분을 넘어 장사가 되는지 안되는지 실리를 따지는 시대가 왔다. 비행기도 날아다니는 광고판으로 생각하고 온갖 그림을 그려 넣는 세상이 되었다. 공항 건물도 곰살맞게 승객에게 다가가서 이것저것 팔고 광고해야 한다.

하지만 외국 관광객들이 대합실에 앉아 무료하게 비행기를 기다리도록 하는한 우리의 갈 길은 멀다. 남은 동전도 다 털어놓고 가도록 대합실 옆에 오락실이라도 배치해야 한다. 도착한 승객들에게는 여행의 피곤함을 풀도록 샤워실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갈아 탈 비행기 시간이 남은 승객에게는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지 않도록 큼직한 사물함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물론 모두 유료다. 이런저런 상업시설이 발부리를 잡도록 건축적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그렇지 이게 필요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백화점 설계와 운영의 기본원칙은 공항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김포공항은 불친절하다. 벽에 걸려있는 전화기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다르며, 카드는 어디서 사고, 얼마를 넣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영어로 설명해 놓은 전화기는 찾을 길이 없다.

공항에는 배낭을 메고 지하철로 서울 인사동의 여관까지 가보겠다는 혈기 넘치는 이국의 젊은이들도 도착한다. 그러나 지하철 김포공항 역에 그려진 노선도는 보이지 않는다. 구석구석을 샅샅이 챙겨보지 않으면 당산철교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개통도 되지 않은 노선들을 굳이 그려놓고 ‘개통예정’이라고 구석에 따로, 그것도 때로는 한글로만 써놓는 것이 우리의 ‘친절함’이다.

김포공항의 시대도 석양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대는 인천공항에서 맞겠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거점공항이 되겠다고 우리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본의 간사이 공항, 홍콩의 첵랍콕 공항과 하늘의 패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필요 없는 국책사업이라는 회의도 있다. 그러나 야망 없이 미래는 없다. 그 승부수는 바로 건축에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신기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 전통미의 조화’, ‘처마곡선’으로 표현되는 어줍잖은 지역정서는 새로운 세기의 야심을 담을 수 없다. 우리가 전통적 곡선미로 공항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남들은 이용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최고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완공한 공항들은 이미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간사이 공항의 지붕형태는 일본 전통이 아니고 냉난방 공기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었다. 우리가 면세점에 몇 달러 짜리 한복 인형을 진열해 놓는 사이 그들은 수백 달러짜리 전자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집약된 기술과 냉철한 논리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압도당할 만큼 아름답다. 공항이 공유할 정신은 바로 그런 것이다. 비행기는 공항의 소도구이기도 하다. 엄청난 덩치를 가진 기계가 전력으로 활주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다른 어떤 운동경기도, 드라마도 보여주지 못하는 박진감 넘치는 것이다.

공항은 창 밖 가득 그 숨막히는 에너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밝고 환한 건물은 그제서야 하늘과 여행과 미래라는 푸른 색의 감수성을 담을 수 있다.

유학 가는 삼촌을 배웅 나왔다가 활주로를 보게 된 어린이에게 비행기는 경외와 동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때 공항은 단지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기능적 공간을 넘어서 어린이가 평생 간직할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우리의 두근거리는 감수성을 담아낼 때, 공항은 그제서야 우리의 것, 우리의 얼굴이 된다.

서현<건축가> 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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