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금감委 '들러리 세우기'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10분


정부의 수익증권 환매대책이 실시되는 첫날인 13일 오전.

증권사 투신사의 객장마다 개인투자자들의 문의로 대혼잡을 빚은 가운데 금융감독위원회는 투신사 직원을 불러 이번 대책 내용을 상세히 교육시키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투신협회와 한국증권업협회에서 건의해 정부가 승인하는 형태로 발표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

정작 대책을 건의한 협회측 인사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금감위에서 교육을 받는 모습은 영 어색했다.

투신협회 관계자는 “다 아시면서…”라는 말로 이유를 묻는 기자의 말에 답변을 대신했다.

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발표 당일 벌어졌다. ‘12일 저녁 8시에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가 나간 직후인 6시반경 투신협회로 금감위가 작성한 문건이 전달됐다. 이어 7시엔 긴급 투신사사장단회의가 열려 이 자료를 검토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사장은 ‘효과가 있겠느냐’는 투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금감위에 곧바로 건의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만들어 협회에 전달한 것이 정부라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

‘관치금융’의 냄새를 지우느라 머리를 써야 하는 정부나 그동안 관치에 길들여져 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시장 관계자들. 이번 조치가 금융시장에서 또 다른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이런 모습 때문이다.

박현진<경제부>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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