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증시와 「카지노 자본주의」

입력 1999-08-02 19:26수정 2009-09-2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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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은 ‘카지노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흥미진진한 첫번째 풍경. 한국인 존장은 9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미라지 호텔 카지노에서 사흘 동안 무려 186만달러를 탕진했다. 그가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월간 ‘말’과 한 언론사가 명예훼손과 무고혐의로 서로 맞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두 번째 풍경.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에 사는 마크 바튼이라는 남자가 가족을 죽인 다음 증권회사 객장에 총을 난사해 20여 명을 살상했다. 그는 온라인 증권망을 이용한 초단기 주식거래에서 큰돈을 잃었다.

사뭇 황홀한 세 번째 풍경. 외환위기 이후 300선까지 곤두박질쳤던 종합주가지수가 일시적으로 1000을 돌파했다. 인터넷 주식거래가 확산되면서 강남과 명동의 샐러리맨들이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 보는 바람에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 기업이 하나둘이 아니다. 억대 연봉의 펀드매니저가 도처에 출몰하고 고급 룸살롱은 예약손님으로 만원을 이룬다.

만사를 옳고 그름이나 합법 불법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려운 법. 도박이 바로 그렇다. 요즘도 억대 불법 도박판을 벌인 죄로 구속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카지노와 주식시장도 그 원리는 불법 도박과 똑같다. 우선 누군가 ‘하우스’(카지노, 증권거래소)를 열어주고 ‘고리’(거래수수료)를 뜯는다. ‘큰손’(기관투자가)과 ‘잔챙이’(소액투자자)가 있으며 ‘속임수’(승률조작과 작전세력)가 통하고 판돈이 모자라는 사람에게 ‘노름빚’(투자자금)을 내준다는 점도 같다. 거기서 이루어지는 거래행위가 부가가치의 생산과는 무관하며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패가망신을 하는 이가 속출한다는 점도 똑같다.

다른 점이라면 카지노와 증권거래소는 국가에 약간의 세금수입을 가져다 준다는 점, 주식시장은 기업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민간가계의 저축을 곧바로 생산활동에 끌어다 쓸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애틀랜타의 참극을 초래한 초단기 주식거래는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돈 놓고 돈먹기’ 노름에 불과하다. 샐러리맨들의 일손을 붙잡는 인터넷 주식거래도 마찬가지다. 최근 주가 급상승은 단기 시세차익의 유혹에 끌려든 수많은 노름꾼들의 ‘합법적 도박’이 만들어낸 거품현상이다.

생각해 보라. 불과 1년여 만에 종합주가지수가 300 수준에서 1000 선으로 올라선 것은 상장기업의 시장가격이 3배로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직후 국내외 투자자들의 심리적 공황상태 때문에 주식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한 사실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주가 상승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거둘 미래 수익이 그 사이 3배로 커졌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합법적 도박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노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노름꾼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윤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더라도 절대 인위적인 증시 부양책을 쓰지 않을 것임을 미리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한 직후 곤두박질쳤던 89년 상황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노름빚(투자손실)을 정부가 책임지라며 항의시위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유시민(시사평론가)s2smrhyu@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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