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正과세로 가는길]사회보험료의 공평부과

  • 입력 1999년 7월 18일 18시 39분


개업 변호사 A씨는 4월 국민연금 소득신고때 월평균 소득을 360만원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내년 통합 의료보험료 부과모형 개발을 앞두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책정한 그의 소득은 200만원이다. 반면 국세청에 신고된 그의 소득은 월평균 729만원.

한 사람의 소득을 이처럼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의료보험관리공단, 그리고 국세청이 각각 다르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의보료 산정기준 소득과 연금신고 소득은 무려 1.8배의 차이가 나고 의보료 기준 소득은 소득세 신고소득의 27%에 불과하다. 이는 전문직 자영자의 소득이 ‘안개속’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영자 소득 실체가 파악되지 않음에 따라 정부 각 기관이 제멋대로 소득을 평가해 사회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 기관들이 자영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소득을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부과금 손실은 봉급생활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경우 소득 파악이 어려운 자영자 집단을 직장인과 분리해 운영하는 경우는 많아도 똑같은 소득에 대해 세금 다르고, 연금보험료 다르고, 의료보험료 다른 경우는 없다.

최근 정부 여당이 시행도 하기 전에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려는 것도 자영자 소득 파악의 어려움을 인정한 때문이다. 현행 지역의보 가입자의 경우 소득 재산 자동차를 각각 66%, 27%, 7%의 비율로 산정해 보험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의료보험 통합을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은 내년 1월1일부터 보험료를 소득단일기준으로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자영자 소득을 파악할 수 없는 현재 상태에서 통합 의료보험료는 국민연금 때와 마찬가지로 신고소득을 기초로 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될 경우 국민연금 파동이 재연될 것은 분명하다. 신고소득의 문제점은 이미 4월 국민연금 확대 시행 과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났다.

국민연금의 소득신고 결과 자영자의 월평균 신고소득은 84만원으로 봉급생활자 소득 144만원의 58%에 불과했다. 올해부터 국민연금에 편입된 자영자의 하향신고로 인해 지난 10여년간 연금을 낸 후 내년도에 연금을 타게되는 직장인가입자의 연금지급액이 13%가 감소하게 됐으며 국민연금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봉급생활자가 고소득 자영자를 도와주는 소득역진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이런 불합리한 현상은 의료보험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소득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봉급생활자의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소득 추계가 안되는 자영자에게는 보험료가 적게 부과돼 결과적으로 봉급생활자가 자영자를 도와주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정부 여당은 자영자에게 소득 외에 소득을 추산할 수 있는 재산 생활수준 직업 경제활동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쪽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

사회보험통합기획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4대 보험의 완전통합은 불가능하다며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실업보험과 산재보험을 통합하는 2+2 방식의 통합을 제안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징수업무의 통합뿐이어서 공평부과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못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의 하승수(河昇秀) 변호사는 “세무조사라는 강력한 수단을 가지고 수십년간 세금을 부과해온 국세청도 자영자 소득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의료보험관리공단이 자영자 소득을 파악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에서 표면화됐지만 사회보험을 공정하게 부과하기 위한 해결책은 세제 세정개혁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세청조차 믿을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니 자영자의 탈세가 성행하고 사회보험에 있어서까지 근로소득자에게 피해를 주게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공정 과세와 사회보험료를 둘러싼 직장인과 자영자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료 부과 징수 체계를 과세자료가 있는 국세청으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사회보험료 부과 징수 체계를 국세청으로 단일화할 경우 국세청의 과세자료를 기초로 보험료를 매기게 돼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부과되고 기관마다 각각 사회보험료를 부과하고 징수하는데 따른 엄청난 규모의 관리운영비를 절감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지역의료보험은 의료보험관리공단이, 직장의료보험은 직장의료보험조합이,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근로복지공단이 각각 징수 관리 운용 그리고 지급까지 책임지고 있다.

올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관리운영비는 1925억원, 의료보험의 관리운영비는 6842억원이나 된다.

〈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선진국 어떻게 운용하나▼

나라마다 사회보험을 운영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국세청 과세자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매긴다는 점은 대체로 같다.

국세청이 파악한 소득을 근거로 세금은 물론 연금보험 의료보험 등을 요율에 따라 징수한 뒤 이를 각 보험의 관리조직에 나눠주는 것.

먼저 영국의 경우. 국세청 과세자료를 기준으로 사회보장성 산하 징수청에서 일정액의 사회보험료를 징수해오다 올 4월부터 관리효율화 차원에서 국세청으로 징수업무를 일원화했다. 징수는 국세청에서 도맡아 하고 연금 고용 질병급여 등 현금 급여는 사회보장성의 급여청, 국민보건서비스는 보건성에서 각각 관리하는 것.

스웨덴과 캐나다의 경우도 전 국민을 상대로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 제도를 병행하고 있으며 국세청이 파악한 소득을 근거로 소득의 일정 비율을 각종 보험료로 내도록 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는 다소 특이한 형태. 조세방식의 연금 및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즉 일종의 공적 부조와 비슷한 성격인데 당연히 국세청이 세금처럼 일괄 징수한다. 특히 호주는 연금의 경우 일정 소득 이상인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처럼 걷고도 급여 혜택은 없다.

일본은 자영자의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 자영자는 기초연금에만 가입토록 한 케이스.

따라서 자영자 소득파악이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기초연금 보험료의 액수가 많지 않아 자영자와 직장인 간에 별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 단 후생연금은 피용자만 가입하도록 하되 피용자의 기준을 1인 이상 사업장으로 넓혔다.

역사적으로 길드(동업 조합)가 발달해 온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는 조합별로 연금 의료보험 등을 자체 운영하기 때문에 자영자와 직장인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여지는 없다. 프랑스는 국가가 일괄 징수, 조합에 나눠주고 독일은 의료보험 조직에서 연금까지 걷는 방식.

요컨대 ‘추정소득’ ‘권장소득’ 등의 신개념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없다. 대체로 소득이 잘 파악돼 있어 부과 근거가 확실하고 국세청이 징수업무를 맡는 나라가 많다. 자영자의 경우 기초연금만 실시하는 나라도 있으며 선진국의 경우 자영자 비율이 높지 않아(10∼20%) 소득비례연금을 병행 실시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자영자의 비율이 54%에 달한다.

국민연금 관리공단 연구센터 김성숙(金聖淑)책임연구원은 “사회보험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건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며 이는 무엇보다 소득 파악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동아일보―참여연대 공동취재팀]

▽동아일보〓정동우차장, 정성희복지팀장 하종대사건기획팀장 정용관 홍성철 김상훈 권재현 선대인(이상 사회부) 신치영기자(경제부).

▽참여연대〓김기식정책실장 윤종훈전문가팀장(회계사) 하승수 박용대변호사 최영태 이재호회계사 등 관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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