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낙연/이래도 미래가 있을까

입력 1999-07-14 18:36수정 2009-09-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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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서울에서 한국 중국 일본 기자 7명이 만났다. 중국 기자는 “30세기에는 지구에 중국과 인도만 남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정신이 버쩍 들었다. 발언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30세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이 새 천년의 기념물로 밀레니엄 돔을 만들고 있다. 영국인들에게도 ‘30세기’가 관념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바야흐로 세기말이다. 100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0년 후의 세계에 대한 예측이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다. 100년 전에도 그랬다. 오늘의 세계를 100년 전의 사람들이 예측한 것이다.

영국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는 1902년에 벌써 ‘세계의 미국화’라는 책을 냈다. 그는 미국의 강점을 “우수한 인재들이 비즈니스에 몰리고 청교도 전통을 이어받은 자기절제가 발휘되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교육 생산의욕 민주주의를 배워야 영국이 회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가 들어도 옳은 진단이다.

미국 대법원판사 헨리 브라운은 1895년에 ‘20세기’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노동과 자본을 어떻게 타협시킬 것인지가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그 해결책을 사유재산 파괴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유재산은 문명의 기초”라고 지적했다. 20세기 사회갈등의 원천, 이데올로기 대립과 그 종말을 그는 정확히 짚어냈다.

미국의 여성월간지 레이디스 홈 저널은 1900년 12월호에서 ‘향후 100년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예시했다. 귀찮은 파리 모기 바퀴벌레가 사라지고 알파벳에서 적게 쓰이는 C Q X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인 평균수명이 35세에서 50세로 늘어나리라는 예측은 단견이었다. 그러나 고속도로 탄환열차 조력(潮力)발전 에어컨 소음총(消音銃) 잠수함 휴대전화의 등장은 적중했다. 흑색 청색 녹색 장미와 사과만한 딸기의 출현도 맞혔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영국이 새 천년을 꿈꾸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100년 전에도 그들은 100년 후를 예측했고 준비했다. 지금 그들은 훨씬 길고 넓게 보고 있다. 영국이 밀레니엄 돔을 짓는 동안 미국은 새 천년의 세계경제질서를 새로 짜려는 밀레니엄 라운드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을, 경쟁력이 약한 분야에는 ‘공정무역’을 주장하며 미국식 시스템을 세계에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이를 제지하지 못한다. 그럴만한 준비가 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휩쓸려 가는 것 같다.

삼성자동차도 그렇다. 모든 당사자가 눈앞의 이익에만 함몰돼 있다. 재벌은 잘못된 선택의 책임을 스스로 지려 하지 않는다. 정부와 게임이라도 하는 것일까. 정부가 강하게 나오면 움츠리고 약하게 나오면 도도해진다. 정부는 일관된 철학과 전략도 없이 오락가락했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말했다. 전직대통령은 다짜고짜 ‘정치적 보복’이라고 외치고 야당은 대안도 없이 지역정서에 영합한다. 불과 2년 전의 기아자동차 사태를 모두 잊고 있다.

이런 정치, 이런 재벌로도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2년 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가 100년 후를 기약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라도 좋다.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를 머리에 넣고 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낙연<국제부장>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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