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엿보기]스페인, 달러로 중남미 공략

입력 1999-07-04 18:37수정 2009-09-2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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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복자들은 500년 전 총과 대포를 앞세워 중남미에 진출,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약탈했다.

찬란했던 마야와 잉카 문명은 땅 속에 묻혀버렸으며 스페인 정복자의 혼혈 정책으로 메스티소 등 혼혈족이 오늘날 중남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일까.

90년대 들어서 스페인 정복자의 후손은 돈으로 중남미를 공략하고 있다. 최근 스페인 렙솔사는 134억달러(약 16조원)를 들여 아르헨티나의 주요 에너지 그룹인 YPF를 인수했다.

이로써 90년대 들어 스페인 기업이 중남미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모두 400억달러로 늘어났다.

중남미 국가 중 경제 상태가 가장 좋은 칠레는 스페인 기업들의 천국. 스페인 기업은 칠레 상장업체 중에서 주가총액 기준 상위 3개사에 속하는 에네르시스 엔데사칠레 CTC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지는 스페인 기업이 이처럼 쉽게 중남미를 공략하고 있는 배경에는 같은 언어권이란 점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랜 식민통치의 유물인 언어가 현대에 이르러 경제주권을 빼앗는 무기가 되고 있는 셈.

돈이 아쉬워 스페인 자본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중남미인들이 스페인 기업을 마냥 환영하지는 않는다.

중남미인들은 스페인 기업가를 보면서 과거 중남미 원주민을 억압했던 정복자를 연상하는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렙솔사가 YPF를 인수하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유력 일간지인 라 나시온은 “YPF 경영권을 스페인에 넘겨줌으로써 위대한 아르헨티나 정신이 땅 속에 묻혔다”고 보도했다.

자본도 기술도 없다보니 사죄조차 하지 않은 침략자 일본을 하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60년대 한국과 중남미의 사정이 비슷한 것 같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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