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해외체험기]우간다서 봉사활동 유형렬씨

  • 입력 1999년 5월 31일 19시 29분


저개발국의 긴급구호와 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의 봉사단원 유형렬(柳炯烈·41)씨는 우간다 국민에게는 가뭄 끝에 단비를 오게 하는 ‘레인메이커’같은 존재로 통한다.

아프리카 동쪽에 자리잡은 저개발국가인 우간다는 70년대 이후 계속되는 내전으로 가난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 유씨는 7년째 현지에서 황무지 개간사업과 농촌공동체 건설을 통해 원주민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농업기술가다.

최근 일시 귀국한 그의 얼굴은 건강한 구릿빛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활동중이던 대학 후배의 방문이 전환점이 됐죠.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는데 형은 뭐하고 있느냐’고 질타하더군요.”

서울대 농대 졸업 후 전남 고흥군의 한 농업고교 교사로 근무하던 90년 말의 일. 그는 후배가 다녀간 뒤 밤새도록 부인과 상의해 다음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곧바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단원으로 가입했다.

1년여의 교육과정을 거쳐 92년 4월 유씨는 부인 이민자(李玟子·40)씨, 아들 정상(正相·15)군과 함께 우간다 땅을 밟았다.

“처음엔 식량문제만 해결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처음 들어간 난민 이주마을인 음부로정착촌 주민들은 정부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

CR) 등의 지원에 익숙해져 자립의지가 없었다. 5백30여 가구의 대부분이 종자용 콩을 그냥 먹거나 시장에 내다파는 것을 보고는 기가 막히기도 했다.

“주민들의 자립의지와 자신감을 키워주고 잠재력을 계발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 거죠.” 유씨 가족은 끈질기게 주민들을 설득해 농토 개간사업과 농작물 재배를 계속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어린이와 문맹자들을 위한 기초교육도 시작했다.

그리고 3년. 4백여 가구가 바나나 콩 감자 배추 등을 가꾸며 자립하게 됐고 정착촌에는 저수지 학교 교회 등이 생겨났다.

96년 유씨 가족은 우간다 북동부의 쿠미로 옮겨갔다. 쿠미는 91년까지 반군 지휘부가 있던 곳으로 내전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고 농토가 피폐해져 기아가 계속돼온 지역. 그러나 유씨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곳도 2년여만에 훌륭한 농촌공동체로 탈바꿈했다.

유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쿠미에 대학과정인 ‘국제지도자 훈련원’을 설립키로 하고 기부금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 위해 귀국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자립적이고 지속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교육받은 지도자들을 꾸준히 배출해야 한다”며 “우리의 조그만 도움이 그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지원을 호소했다. 02―544―9544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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