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순/담배연기속엔 고통 불행 죽음이…

  • 입력 1999년 5월 31일 18시 53분


담배가 개인과 가정은 물론 전체 사회에 가져오는 불행 슬픔 고통 그리고 경제적인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단언하건대 현재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절반은 50, 60대에 담배로 인한 질병에 걸려 사망할 것이다. 나머지 절반도 삶의 질이 대단히 낮은 노년기를 살게 될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작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 남성과 청소년의 흡연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 매년 담배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약 4만명에 이른다. 경제적으로는 약 6조원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피해는 앞으로 급속하게 증가할 것이다.

▼ 청소년 흡연 위험 수준 ▼

청소년 흡연율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거의 절반이 담배를 피운다. 연령도 중학생으로 낮아지더니 이제 초등학교 상급학년에서도 담배 피우는 학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학생뿐만 아니라 모범생도 피운다. 청소년 시절에 흡연을 시작하면 건강에 미치는 피해가 더욱 크며 니코틴 중독에 더 깊게 빠진다. 이들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15년 정도 단축될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와 교사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중차대한 청소년 문제이다.

특히 임신한 여성의 흡연은 태아와 영아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로 간주된다.

선진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금연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많은 나라에서 대통령이 직접 이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클린턴대통령이 나서서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하고 담배와의 전쟁을 벌인다. 담배는 마약이기 때문에 생산 유통 광고 판촉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규제하는 것이다. 청소년 흡연과 간접 흡연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담배회사가 국민에게 준 막대한 피해를 법적으로 보상하라는 판결도 계속 이루어진다.

새로 취임한 WHO 그로 할렘 브룬틀란 사무총장은 “담배는 인류의 가장 큰 공적”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금연을 향한 힘찬 전진”이라는 슬로건 아래 담배를 약품과 같은 수준으로 통제할 것을 제안했으며 세계의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금연 국제조약을 준비 중이다.

지난주 세계은행(IBRD)에서는 ‘흡연 유행의 제동, 정부와 담배 규제를 위한 경제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금연운동을 예방접종 만큼이나 비용효과가 큰 중요한 공중보건사업이라고 규정했다.

한 나라의 금연운동 수준은 담배 가격에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로 가늠할 수 있으며 담뱃값의 3분의 2 내지 5분의 4까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IBRD는 제안했다.

▼ 국민 금연운동 벌일때 ▼

이 보고서는 담배가격을 올리면 흡연율은 감소하고 정부의 세수는 오히려 증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금을 인상함으로써 청소년의 흡연율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인 움직임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흡연자들은 아직 흡연의 심각성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사회 전체적으로 흡연을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직 만연하다. 의료인들을 포함해 사회지도자들이, 드라마에서 탤런트들이,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담배를 피우면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동료들과 함께 쓰는 사무실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버젓이 담배를 빼어 물며 농담이라도 ‘끽연권’ 운운하는 풍토는 개인의 양식도 문제지만 나라 전체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부 관련 부서는 흡연으로 인한 국민건강의 손상보다는 오히려 세수의 감소를 우려하며 담뱃값의 1%도 안되는 건강증진기금의 인상조차 못마땅해 한다. 그동안 정부가 담배인삼공사를 통해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에 대한 의식조차 없다. 이런 상황은 아직 한국이 개발도상국가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시켜준다.

이제 대통령이 앞장서고 온 국민이 나서서 담배 퇴치운동을 벌여야 한다.

정부가 담배의 생산 유통 광고 판촉 판매 등 전 과정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통제해야 한다. 정부와 담배인삼공사는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죽음 슬픔 고통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빠른 시일 내에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일순 (한국금연운동 협의회장·연세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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