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탠더드]「日프로 베끼기」거액 손배소 자초

  • 입력 1999년 5월 28일 0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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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가 현재 인기리에 방영하는 ‘특명 아빠의 도전’은 일본 TBS TV ‘행복 가족계획’의 포맷과 내용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려 있다. ‘특명 아빠의 도전’ 제작사인 SBS프로덕션은 지난해 6월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표절을 이유로 한 저작권료 지불 요청을 받았다.

일본 TBS의 해외 판권을 가진 미국 벨론엔터테인먼트사가 “이 프로가 TBS ‘행복 가족계획’의 카피인 만큼 저작권료를 지불하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특명…’은 리포터(보조진행자)가 도전과제(매주 바뀜)를 갖고 시청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전문가 시범을 보이고 아버지가 연습하는 모습을 방영한다. 그 뒤 스튜디오에 온가족이 출연해 아버지의 최종 도전을 지켜보는 프로이다. ‘특명…’과 ‘행복…’은 기본적 내용이 같다는 것이 일본측의 시각이다.

곤혹스러워진 ‘특명…’ 제작진은 “자체 개발한 프로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놓고 일본쪽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표절은 관행적으로 쓰는 말이다. 법률상으로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함에 따라 잠복된 상태이지만 일본 방송이 개방되면 저작권 침해중지 및 손해해상 청구소송이 늘어날 것이다.”(법무법인 태평양 이후동·李厚東변호사)

3월 MBC 미니시리즈 ‘청춘’의 도중하차는 방송 표절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이 드라마는 방영초부터 인물설정은 물론 구체적인 화면 연출에 이르기까지 일본 후지 TV의 ‘러브 제너레이션’을 표절했다는 의혹 속에 네티즌으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자 방송사측은 결국 조기 종영을 결정했다.

방송개발원(현 방송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만들기’, KBS2 ‘TV는 사랑을 싣고’ 등 TV 3사의 오락프로 중 상당수가 일본 프로를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일본 방송사에 연수를 다녀온 한 중견PD는 방송인으로서 수모에 가까운 체험을 고백했다. 그는 “제작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 TV의 프로 제작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면서 “일본 방송사들이 한국 지사를 통해 직간접으로 한국 프로를 꼼꼼하게 모니터하면서 개방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대중문화평론가 이규형(李奎炯)씨는 “니혼 TV가 한때 ‘TV 특보왕국’ 화면에 한국의 일본프로 베끼기를 다양하게 보여준 후 일본 오락프로에서 한국의 표절 사례를 꼬집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고 전했다.

작년 12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국제 TV 프로그램시장에서 일본 TBS와 덴마크의 DR TV 등은 각종 쇼의 포맷을 전략적인 판매상품으로 내놓았다. 선진국 방송사들은 쇼의 포맷이야말로 비싼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서도 오락프로의 형식을 빌려주고 지속적으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황금거위라고 보고 전략적으로 투자를 한다. 그러나 한국방송계는 포맷을 베끼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현업 PD들은 대부분 “오락프로에서 아이디어를 서로 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거나 “미국 프로를 베낀 과거를 지닌 일본 방송이 한국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응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식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동변호사는 “저작권법이 보호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양식”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잘못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드라마의 전체적인 줄거리나 에피소드, 쇼프로의 포맷과 진행방식 등 구체적 표현 양식에서 일본 것을 본뜬 한국방송의 오락프로들은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진흥원은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일본 프로 모방 실태를 망라한 보고서를 곧 발간할 예정이다. 한 연구원은 “일본 방송이 소송을 내 한국 방송이 패소하면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마다 매회 1백만원 가량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방송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면 KBS MBC SBS 등 방송사들이 위치한 여의도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지법 남부지원에는 저작권료 지불을 요구하는 일본 방송사의 제소가 있따를 전망이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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