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이익치/돈냄새 먼저맡고 먼저…

  • 입력 1999년 5월 6일 19시 53분


사람들은 가끔 내게 이런 농담을 던진다. “거, 익치(益治)라는 이름이 증권회사 회장 이름으로 꼭 맞는구먼. 이익을 관리한다는 뜻이니까. 그 이름을 믿고 돈을 맡기리다.”

어떤 이는 내 사주를 보고 나서야 회사에 자금을 맡겼다. 나는 정통 증권맨으로 성장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주가 좋은 것인지, 이름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내게 돈을 맡긴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돈을 벌었다.

사실 나 자신이 금융이나 증권을 잘 알아서 증권회사 회장이 된 것이 아니라 어려운 기업을 일으켜 세우라는 명령을 받고 부임했다.

96년 장세가 매우 어려울 때 현대증권에 왔다. 그동안 현대그룹에서 어려운 현장만 골라보낸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뜻을 곰곰이 헤아려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 증권에 문외한이었다.

업종이 다르더라도 기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돈 냄새를 맡는 후각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비슷하다. 나는 돈 냄새를 맡으면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작년 초 외환위기 이후 금리가 30% 이상으로 치솟을 때 고금리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투자자들한테 채권형 수익증권을 구입하라고 적극 권했다.

나는 30년 동안 기간산업 현장에서 뛰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저력을 잘 알고 있다. 40년 동안 온갖 역경을 뚫고 성장한 한국 기업들이 이 위기를 곧 극복할 것이라 믿었다. 곧 경제도 제 궤도를 찾고 금리도 하락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현대증권에만 30조원 가까운 자금이 모였고 업계 전체로는 1년반 동안 1백50조원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자금이야말로 지난해 한국을 위기에서 구한 ‘애국 자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채권형 펀드의 자금은 은행 대출과 달리 투자자가 자금을 예탁하는 동시에 기업에 채권이나 기업어음(CP)의 형태로 지원되고 금리도 대출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이 자금은 금리 하락을 더욱 가속화시키면서 기업의 금융비용 감소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98년 8월 위기가 어느 정도 위기가 진정되면서 이제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권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당시 금융이나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지는 전문가가 많았다. 나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믿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보았다. 당시에는 획기적 대형 펀드인 ‘불스아이’라는 주식형 펀드를 판매했다. 그것이 현재 90%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국내의 구조조정이 완성단계에 들어서고 해외여건이 점차 호전됨에 따라 경제성장과 국내 주가상승에 대한 확신이 더욱 커졌다. 성장의 과실을 경제위기로 인해 고통을 겪은 국민과 더욱 많이 나눌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바이 코리아’라는 초대형 주식형 펀드를 설립했다. 홍보 설명회를 열고 직접 강연에 나서면서 투자자들의 뜨거운 열기에 놀랐다.

미국과 영국은 레이건과 대처 시절에 개혁을 이룩한 덕분에 오늘날 번영을 이루고 있다. 한국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개혁을 해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97년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 경제는 무한 경쟁 속에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진 경제구조로 바뀌고 증시도 미국 월가와 같은 수준의 투명성을 자랑하는 체제로 바뀔 것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저평가된 한국 증시도 지속적 상승세를 보일 것이다.

이익치(현대증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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