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상균/ 봉급생활자는 봉이 아니다

  • 입력 1999년 5월 6일 19시 38분


국민연금제도에 바람잘 날이 없다. 이번에는 봉급생활자들이 분기탱천해 보험료 납부거부까지 들먹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자영업자들이 불성실 소득신고를 함으로써 봉급생활자들의 연금액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당초 계획대로 추정소득 방식을 원만하게 실시했더라도 오늘 같은 일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권장소득 적용이 무산되면서 봉급생활자들은 자영업자의 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불쾌감과 분노는 이유있고 정당하다.

▼ 자영업자 소득 조사를 ▼

봉급생활자들은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중심 세력이다. 제발 아무리 분하더라도 중심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났을 때 화풀이만 한다고 화근이 자동적으로 해소되는 법은 아니다.

특히 연금제도와 같은 미래에 관한 장기 계획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현 시점에서 무엇이 최선의 해결책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선 국민연금제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가 결정되기 때문에 소득이 밝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다면 봉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득파악이 안된 사람의 소득을 파악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향신고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규모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전체 1천여만명중 처음부터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을 빼고 나면 8백80여만명이 실제 가입대상자이다. 이들의 54.5%인 4백80여만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보험료 납부를 유예받은 사람들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으니까 연금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연금재정에 당장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소득이 있다고 신고한 4백여만명중 부실신고의 의심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은 1백60여만명에 이른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중 40%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제시한 권장소득의 80% 이상을 신고한 성실신고자로 추정된다.

결국 실제로 문제가 되는 사람의 숫자는 90만명 정도가 되는 셈이다. 이들은 이미 의료보험에서도 실제소득에 비해 낮은 보험료를 냄으로써 민폐를 끼친 지 오래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조세정의의 실현에 큰 걸림돌인 것이다.

건국 이후 반 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 아직도 조세의 사각지대가 공공연히 존재하는 사실은 한국이 현대국가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과 같다. 이제 그들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공권력 개입은 필연적 당위이다. 양심불량자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방치한 역대 정부의 무능력을 먼저 교정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중심세력인 넥타이 부대가 이러한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한시라도 늦기 전에 봉급생활자들은 각종 시민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앞으로 정부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항을 반드시 실천하도록 압력을 넣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정부에 압력 넣어야 ▼

첫째, 정부로 하여금 조속한 시일내에 자영업자 소득파악에 관한 청사진을 발표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의 자영업자 소득파악위원회가 그 활동을 시작했다. 봉급생활자들은 따라서 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자영업자 소득파악 3개년 종합계획을 만들도록 요구할 수 있다.

둘째, 내년부터 3개년 계획이 마무리되기까지 발생하는 신규 연금수급자들의 불이익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 손실액을 메우도록 청구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매년 행하는 균등부분의 재평가작업시 손실을 보전하는 방법이 현행법으로 가능하며 또 다른 방책도 고려할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하지 못한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3년내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해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지난 주부터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신고소득을 상향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결코 속단할 수는 없지만 예상보다 좋은 성과가 나온 것 같다. 하루 평균 9천여명 정도가 1인 평균 4등급, 즉 28만원 정도의 상향조정에 동의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려면 봉급생활자들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분통이 터진다고 마구 행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정부에 압력을 넣어 정부가 할 일을 독려하는 한편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집요하게 감시하자.

김상균 (서울대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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