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상회담의 전제조건

  • 입력 1999년 5월 6일 19시 3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5일 미국 CNN방송과의 회견에서 밝힌 남북화해협력체제구축 등 ‘한반도 냉전구조해체 5대 과제’와 간접적인 남북정상회담제의는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과 방향을 다시 확인하면서 북한의 성의있는 반응을 촉구한 데 의미가 있다. 마침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도 미국의 대북정책원칙을 들고 이달중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됐던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미국측 조사도 곧 이뤄질 예정이다. 김대통령의 CNN 화상회견은 이처럼 한반도 분위기가 풀려가는듯한 시점이어서더욱관심을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대통령의 이날 회견내용이 북한측 자세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북한은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우리의 대북정책 원칙과 방향을 ‘북한 흡수정책’이라며 비난하는 입장만 취해 왔다. 아예 남한정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 평양당국의 태도다. 그러다 보니 대북 비료지원도 사실상 정부가 뒷받침을 다해주는 입장이면서 형식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할 수 밖에 없고 식량지원 역시 국제기구나 민간조직이 아니면 손을 쓸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는 이같은 북한측의 남한정부 외면정책을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아우르며 그동안의 성과를 자랑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정서는 꼭 그런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1년이 지나도 평양측으로부터 별다른 반대급부가 없는,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듯한 햇볕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이같은 사회일각의 괴리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의 방향을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남북한 정상 회담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대사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정상이 만난다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된다. 국내 정치상황과 연계하여 정권차원의 성과로 부각시키려는 유혹에 빠져서도 안된다. 정말 민족의 장래를 염두에 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전제조건이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북한의 태도가 변해야겠지만 우리 정부도 서두르는 듯한 자세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한반도문제는 결국 남북한 당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북한당국과의 대화재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북한측이 남한정부에 대한 대화기피 정책부터 버려야 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호혜적인 입장에서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남북한 당국의 대화채널이 가급적 빨리 마련되는 게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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