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선거경제와 그린스펀

  • 입력 1999년 4월 16일 19시 58분


‘투자자들이 에베레스트 정복을 앞두고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의 기후를 살피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나 인플레 징후가 전혀 없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것으로 상황은 끝났다.’

미국 CNN방송은 지난달 뉴욕증시 다우존스지수가 10,000을 돌파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시장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잘 설명해준다. 그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다.

▽미국경제가 9년째 누리고 있는 저물가 장기호황의 일등공신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린스펀(73)은 공화당의 레이건과 부시, 민주당의 클린턴까지 대통령 3대에 걸친 FRB의장으로 FRB의 독립적 통화신용정책을 성공시켜왔다. 부시정권 때는 이 행정부의 금리인하 압력을 물리쳐 인플레를 막아냈다. 작년엔 금융경색이 걱정되는 시점에서 세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해 시장을 회복시켰다. 그의 금융정책은 기업 구조조정에 고속도로를 닦아 미국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한편 그는 클린턴행정부의 사회보장계획을 공공연하게 비판해왔다.

▽김대중(金大中)정부는 1년 뒤의 총선을 의식하는 경제운영에 나서는 조짐이다. 청와대가 내수중심의 경기부양론을 주도한다. 사치성 소비까지도 “시장경제에서는 막을 수 없다”고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 재정경제부장관도, 한국은행총재도, 청와대경제수석도, 정부여당내 그 누구도 이론(異論)을 내비치는 사람이 없다.

▽고위 관료들이 하반기엔 부동산값이 오를 것이라고 ‘합의된 전망’을 내놓는 등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이 고작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과 국민에게 거품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경제관료, 긴 안목에서 ‘선거경제’의 후유증을 걱정하면서 정치논리에 맞서는 ‘한국의 그린스펀’은 없나.

배인준<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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