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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6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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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아, 한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군요! 아버지는 앓던 무렵에 갑자기 감을 사오라구 하셨어요. 물론 감이 나오기는 이른 철이라 내가 되물었지요.
홍시요, 단감이요?
땡감을 찾아봐라. 그거 소금물에 담갔다 먹으면 더 맛이 좋단다.
아버지에게는 야채와 과일이 좋다고 해서 제 철 과일은 물론 당질이 많은 파인애플이나 수입 열대과일들도 어머니가 사들여 오고 있었거든요. 나는 시장에 나가 아버지가 일러준 그런 땡감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잘 포장된 단감만을 사가지고 돌아왔어요.
아버지 요새는 땡감이 없대요. 카바이트인가 뭔가로 아예 떫은 감을 연시로 만든다든데 뭐.
응 그래야 상품이 되겠구나. 촌에는 있겠지.
요즘은 애들두 그런 건 안먹을 거예요.
아버지는 단감을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들여다보았어요.
아버지 감을 잡수시려는 게 아니라 감상하려구 그러시죠?
왜 그러면 안된다든? 가을이 보이잖니.
하고는 한참이나 감을 바라보다가 아버지는 내게 물었어요.
너 화가니까 내 재미있는 가을 얘길 들어볼래?
아버지는 해방 이후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건준에 들었대요. 그리고 조공이 성립되면서 입당하게 되지요. 그때는 건준에 기웃거리기는 했어도 별로 할 일 이 마땅치 않아 출판사 근처에서 번역 일을 하거나 공장의 야학 모임에서 강사 노릇을 했다지요. 국대안 반대 사건과 영남의 시월 투쟁 무렵부터 아버지의 활동이 치열해졌지요. 아버지는 그 해 추석에 서울에서는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쌀을 구하러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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