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은희/「남녀차별금지법」 회기내 제정을

  • 입력 1998년 12월 23일 19시 36분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앞두고 인류의 마지막 숙제인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 끝에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제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20세기까지의 남성중심사회에서 폭력과 차별로 얼룩져 온 여성의 삶과 운명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 여성계는 기본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더구나 ‘국민의 정부’출범 이후 여성정책을 전담하는 여성특별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이 너무 낮다는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이로 인해 여성계는 여성특별위에 준사법적 권한을 주는 법률안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발의로 현재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심의되고 있어 이번 회기내에 꼭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 여성특위 권한이 핵심

그런데 법률안의 통과가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투명한 상태에 이르더니 급기야 핵심부분인 준사법적 권한, 즉 시정명령권이 시정권고권으로 약화되어 유명무실한 단계로까지 손질되고 있어 안타깝다.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의 핵심 내용은 세가지. 첫째, 법률안의 목적으로 남녀차별 및 성희롱을 금지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의 권익을 구제함으로써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여성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이를 위해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설치하여 남녀차별에 대한 기준과 개선지침을 수립하고, 법령과 제도 등에 있어 남녀차별이 있으면 이를 개선하도록 권고하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남녀차별사항에 대해서는 이를 조사(직권조사 포함)해 위법 부당한 남녀차별에 대한 시정권고 시정명령 고발을 하는 것이다. 셋째는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의 신청 또는 행정소송에 의해서 확정된 개선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한 것이다.

우리사회에 산재한 관행적으로 용인되고 있던 성차별 행위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이 법 제정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 반대는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성차별을 통해 특권을 누리거나 이득을 보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경총이 이 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시정명령 위반시 벌칙조항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이유다. 이는 IMF체제 이후 급증하고 있는 여성우선해고, 고용차별 등 다양한 성차별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제기된 쟁점은 두가지다. 하나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여성특별위가 준사법적 권한을 가진 남녀차별개선위를 설치할 수 있는가 하는 여성특위의 위상과 연관된 문제다.

여성특위가 대통령 자문기구인지, 중앙행정부서인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 왔다. 현재 행정자치부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이미 나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핑계로 이 법률 제정을 늦추자거나 반대하는 것은 호소할 곳조차 없이 고통받고 있는 많은 여성의 괴로움을 외면하거나 그 급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다.

두번째 쟁점은 정부부처간 혹은 새로 생길 국민인권기구와의 업무의 중복성에 대한 지적. 노동부 산하 고용평등위원회와의 문제는 현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기구와의 문제이고, 국민인권기구와의 관계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기구와의 문제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고용평등위원회의 경우 90년에서 96년 사이에 그 처리건수가 단 9건에 불과했다. 이는 권한의 제한에도 문제가 있었고 노동부 내에서 남녀차별 문제가 지니는 비중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여성정책전담부서인 여성특별위가 시정명령권을 가지고 남녀차별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시정명령권 꼭 있어야

국가인권위원회와 일부 기능이 중복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주요기능을 인권정책 홍보 인권교육 제도개선 등에 두고 개인구제는 공권력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행위에 국한해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남녀차별 피해자에 대한 개인구제는 기존 국가기구에서 해결하도록 하면 기능중복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세계 1백2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권한척도 순위는 83위다. 남녀차별개선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도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여야 총재 모두가 여성특별위의 위상강화는 이미 공언한 바 있으므로 이번 회기내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를 고대한다.

지은희(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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