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호진/「제2건국운동」 논란의 해법

  • 입력 1998년 12월 15일 19시 09분


논란이 되고 있는 제2건국운동은 무엇인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이다.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경제가 느닷없이 환란(換亂)을 일으켜 IMF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되자 국민은 심한 충격과 좌절을 느꼈고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듯 너나없이 경제 살리기 운동에 앞장섰다.

제2건국운동의 출발은 이러한 국난극복의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학자 폴 케네디가 강조했듯이 다음 세기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제대로 개혁을 해야 하고 그런 나라만이 상대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20세기형 노후체제를 개혁하지 않는 한 21세기 신문명을 꽃피울 수 없다는 것이 제2건국운동의 출발점인 듯하다.

▼ 비정치기구案 바람직 ▼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범 4개월이 지나도록 이 운동은 선거운동에 이용하려는 정치적 저의를 가지고 있다는 야당의 비난과 쓸데없는 관변기구를 또 만들려한다는 비판여론에 밀려 정체성도 확립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으며 이해당사자들 사이에는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되고 있다.

이 와중에서 특정 지역에서는 참여과잉사태가 나타나는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참여저지운동이 벌어지는 희화적인 현상이 노정되고 대부분의 국민은 인식의 혼란을 일으켜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제2건국운동에 대한 비판론은 주로 제2건국위의 성격과 역할에 관해 제기되었고 그것은 정부주도에 수반되는 불신과 오해, 말하자면 이 운동이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정부는 제2건국운동을 추진하기에 앞서 운동의 순수성을 입증하고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안부터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논란이 끊이지않자 제2건국위는 14일 김대통령에게 정치색 탈피를 위해 비정치기구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시사했듯이 사람들이 어울려 행동하기 위해서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제2건국운동은 모든 국민이 서로 어울려 벌이자는 국가적 개혁운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논거에서 볼 때 제2건국위가 항간의 비판여론을 수용하여 보완책을 강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진전략에 있어 초기단계에는 관주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점차 민간주도로 전환시켜 나가겠다는 구상은 이 운동이 비록 대통령이 제안한 위로부터의 개혁운동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국민 주체성을 살려야 실효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이 운동은 민간주도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2건국운동과 같은 총체적 개혁운동은 순수 국민운동만으로는 기대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정부와 민간 두 축이 적절하게 역할분담을 하면서 공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다른 한편 제2건국운동이 순수성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려면 새마을운동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새마을운동은 70년대적 상황에서 태동한 개발운동이었고 유신체제를 지탱해준 일종의 정치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이 근대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희생될 수 있다는 빗나간 아시아적 가치의 오류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면 제2건국운동은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을 강조하고 있다.

▼ 정치-행정 우선 계획을 ▼

제2건국운동은 마땅히 국민개혁에 앞서 정부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역대국을 자임하던 나라가 IMF로부터 경제신탁통치를 받게 된 것은 정부실패가 화근이었고 그 이면에는 시장실패를 부채질한 정경유착이 그물처럼 얽혀 있었다. 그렇다면 정치와 행정부터 바로잡아야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국민의 지지와 참여를 유도하게 될 것이다. 정치와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부패사슬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치문화와 관료의식을 바꾸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정부가 정치성을 지양하고 순수한 목적으로 건국운동을 전개하는 한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건설적 대안세력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여당이 이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하듯이 야당 또한 그것을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역감정이나 사사로운 이해를 앞세워 참여와 반대를 저울질한다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국난을 극복하는 일과 새로운 국정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 정부 여당만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며 그렇게 되어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호진(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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