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核과 한미공조

  • 입력 1998년 11월 20일 18시 59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다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영변의 지하시설이 핵과 관련됐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미국의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특사의 발언에 이어 미 국무부도 북한의 핵활동에 대해 믿을 만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핵(北核)문제가 이처럼 불거져 나와 충격이 적지 않다. 반면 한국정부는 ‘의심할 근거는 있지만 아직 핵시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다.

의혹의 핵심으로 떠오른 영변 지하시설의 정체는 하루빨리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북한이 자진해서 먼저 내용을 밝혀야 한다. 그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북한측의 태도는 상식밖이다. 현장조사 결과 핵시설이 아닌 민수용으로 드러날 경우 자신들에 대한 ‘모독의 대가’로 3억달러의 ‘보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94년 북―미(北―美) 제네바 핵합의는 핵시설 건설의 의혹만 있어도 사찰을 받도록 되어있다. 사찰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사찰 대가를 요구한다면 누가 북한과 한 약속을 신뢰하겠는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신용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북한측은 지하시설의 ‘모든 것’을 빨리 공개하고 검증받아야 한다.

미국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 강경해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네바 핵합의 자체를 동결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고조되는 분위기다. 클린턴행정부도 의회와 보수세력의 압력에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럴수록 미 행정부는 북핵문제를 더욱 신중하고 냉철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국내의 정치적 풍향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일이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정부 역시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단호한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들이다. 이미 정경분리정책을 분명히 밝힌 만큼 안보문제는 민간교류와 별개의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야 마땅하다. 금강산 관광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북핵문제를 소홀히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이 문제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유념해야 한다. 안보는 언제나 우리의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오늘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영변 지하시설에 대한 양국간 시각차를 좁히고 공조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과거처럼 두 나라가 대북(對北)강경노선과 포용정책을 엇갈리게 주장하는 불협화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두 정상이 북한의 핵개발을 단호히 차단할 수 있는 공조의 바탕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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