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건영/금융소득종합과세 부활의 문제점

  • 입력 1998년 11월 10일 19시 05분


93년 8월의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금융실명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한 정책은 극심한 혼란을 겪어 왔다. 한때 개혁 중의 개혁으로 불리던 금융실명제는 실패한 정책의 전형으로 매도되고 금융소득종합과세는 96년 1년간 시행된 후 97년 12월 무기한 유보되었다. 그러다가 6일 정부는 느닷없이 금융시장이 안정되는 것을 봐가면서 2000년경에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부활하겠다고 하였다. 정부가 다시 종합과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부활하겠다는 것은 환영하지만 불확실하고 일관성없는 정책운용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 일관성없는 정책운용 ▼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가 종잡을 수 없게 된 주요 원인은 정부가 객관적 경제분석과 국가이익에 바탕을 둔 확고한 정책방향을 수립하지 못한 데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과소비와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금융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금융실명제를 완화하고 종합과세를 유보한다고 하였다. 거액의 지하자금을 양성화해 산업자금화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명제와 종합과세로 과소비와 부동산투기가 뚜렷하게 늘어나거나 금융시장이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지하자금은 대부분 차명계좌를 통해 이미 산업자금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양성화해 다시 산업자금화할 수는 없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이와 같은 비논리적 주장에 의해 국가정책이 좌우된다면 정책은 편협한 정치적 이익의 도구로 전락하고 일반국민은 부당한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비실명인 고용안정채권과 증권금융채권의 발행은 금융실명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원칙이 무너졌음을 말해주는 신호였다. 그러나 각종 세제상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1조6천억원을 목표로 한 고용안정채권의 판매액은 8천7백억원에 불과하였고 증권금융채권은 목표액 2조원의 반도 되지 않는 8천억원어치가 팔리는데 그쳤다. 이러한 사실은 실명제와 종합과세로 금융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막대한 자금이 지하에서 잠자고 있다는 주장이 허구였음을 입증해주는 셈이다.

새로운 종합과세의 기준소득금액은 4천만원 아니면 8천만원이 될 것이며 분리과세 세율은 22% 아니면 15%가 될 것이라 한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는 경제정책이 매우 부실한 분석과 피상적인 상황인식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기준금액이 4천만원일 때에도 납세자의 상위 0.2%(3만2백여명)에게만 적용되는 종합과세를 8천만원으로 기준금액을 높여 시행한다는 것은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본 목적인 형평성을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분리과세 세율을 현행의 22%(주민세 포함 24.2%)로 유지하면서 종합과세만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아직도 정부가 세수입 제일주의에 빠져 형평과 효율의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종합과세를 유보할 때 분리과세 세율을 15%에서 20%(98년 10월부터는 22%)로 인상했다. 최상위 납세자 0.2%에 대한 세부담을 경감하면서 나머지 99.8%의 납세자에 대해서는 세율을 높여 세수입을 올린 것이다.

근로자의 절반과 사업자의 60%가 개인소득세 면세자인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을 위해 분리과세 세율은 현수준으로 유지할 것이 아니라 종합과세를 부활하기 전에라도 10% 수준으로 대폭 낮춰야 할 것이다. 상위 0.2%의 납세자에 대한 종합과세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위 99.8%의 납세자를 볼모로 삼아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조건으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부활시킨다는 방침 외에 정확한 시기, 분리과세 세율, 종합과세 기준금액 등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모호한 내용의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정부가 종합과세 부활의 조건으로 내건 금융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 특히 종합과세의 잠재적 대상자는 정부가 구체적인 종합과세 방안을 확실하게 밝힐 때까지 장기금융거래를 기피하고 단기금융거래를 선호할 것이다. 또한 종합과세 예고기간에 미래의 종합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 구체적 방안 제시해아 ▼

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정책방향의 불확실성은 경제주체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려 경제의 효율성을 훼손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금융경색 투자부진 소비위축 등이 경제회생을 어렵게 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불확실한 실시시기, 내용이 모호한 종합과세정책으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는 금융소득종합과세의 필요성을 인식한 이상 이제 분명한 원칙과 논리, 그리고 정확한 사실인식에 기초한 수준높은 종합과세정책을 마련하여 내년부터 시행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윤건영<연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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