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경은/가정폭력 「집안일 타령」

  • 입력 1998년 11월 3일 19시 09분


“못살겠으면 이혼하든 둘이 알아서 하지 왜 집안일로 경찰까지 부르느냐.” “몇 대 맞은 걸로 애 아빠를 전과자로 만들려느냐.”

남편의 상습폭력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한 한 여성은 도움은커녕 경찰과 주위로부터 따가운 핀잔을 들어야 했다.

시행 5개월째인 가정폭력방지법은 가정폭력을 ‘집 밖’에서 법대로 처리해야 할 사회적 범죄로 보지만 현실은 아직도 ‘집안일’로 묶어두려 한다.

법 제정 자체가 늦은 감이 있는데….

여성의전화 연합이 운영하는 ‘가정폭력사건처리불만신고센터’에는 ‘남의 집안일’ 타령 때문에 또한번 상처를 입은 여성들의 하소연이 넘쳐난다. ‘맞을 짓 했으니까 맞았겠지.’ ‘남자가 술 마시고 그럴 수도 있지’ 식의 단단한 사회통념 탓이다. 덕분에 ‘집밖’에 도움을 청한 피해여성들은 법의 보호는 고사하고 ‘괘씸죄’로 남편에게 더 맞는 경우까지 생긴다.

7월부터 3개월간 검경이 집계한 가정폭력 사례는 1천8백14건으로 전체 폭력 신고사례의 1.7%. 아내의 신고가 가장 많지만 자녀 부모 남편 등의 신고도 포함돼 있다.

이처럼 낮은 수치는 가정폭력이 여전히 ‘집안일’로 인식돼 신고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청은 최근 ‘가정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구태의연하고 미온적 태도를 지양하라’는 내용의 가정폭력 초동조치요령을 내놓고 일선 경찰관을 대상으로 반복교육했다.

‘가상상황’의 신고를 통해 점검관들이 경찰의 대응을 살피는 암행단속까지 벌였다.

창피함과 보복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집 밖’으로 겨우 내민 멍든 얼굴들.

사회가 최소한 집안으로 되밀어넣지는 말자.

윤경은<생활부>ke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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