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빅딜 실천이 중요

  • 입력 1998년 9월 3일 18시 28분


논란이 거듭되던 5대 재벌그룹간의 빅딜이 성사됐다. 기업간 사업교환 형태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하면 7개 업종에 대한 사업구조조정이 합의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당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 여당이 추진했던 빅딜은 예상대로 물건너갔다. 5대그룹은 어느 사업분야도 포기하지 않은 채 부문별 단일법인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압력을 절묘하게 빠져나갔다. 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그렇다고 이번 재계의 합의가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세불리기식의 중복투자로 말썽이 그치지 않았던 7개 업종에서 공동회사가 태어남으로써 과잉설비와 잉여인력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 정리가 끝나면 해당 기업의 경쟁력은 전보다 한층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재벌들이 이번 합의를 교훈으로 앞으로 특정 부문에 대해 무분별한 경쟁적 투자를 자제할 것이라는 점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재계가 정부에 요청한 지원에 대해서도 무작정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은행 대출금의 출자전환은 새로 탄생하는 회사의 경영상태가 전보다 개선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반드시 은행에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여신에 대한 상환조건 조정이나 세제지원도 절제된 범위안에서 이뤄지기만 한다면 전체 산업의 구조조정 촉진차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정부가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은행에 과다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은행의 자율적 판단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재계의 합의가 시장경제 체제상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7개 업종의 재벌연합 공동회사는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갖게 됨으로써 횡포를 부릴 여지가 더 커졌다. 특히 정부에 납품하는 철도차량이나 항공산업 분야의 입찰단가는 높아질 것이 뻔하다. 경쟁을 유도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기업독점을 부추긴 꼴이 됐다.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재벌만 더 배부르게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국제적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또 빅딜논의에 해당되지 않았던 여타 기업과의 형평성에도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이번 사업조정은 자산평가 등 복잡하고 시일이 많이 요구되는 실무작업 과정이 남아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흐지부지해 온 과거 재벌의 행태를 고려할 때 이번 합의가 완성되기까지는 국민적 감시가 필수적이다. 재벌들은 구조조정이 대국민 약속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7개 업종의 사업조정이 완결될 때 재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개선될 것이다. 합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실천임을 명심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